경기 슈퍼레이스 7라운드
장소 영암 F1 서킷
일시 2014년 10월 10~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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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습 주행, 날씨 맑음

첫 타임부터 타이어의 힘을 깨달았다.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슈퍼레이스 5전 때와 똑같은 세팅에 타이어만 바뀌었을 뿐인데 5전에 비해 무려 3초 가까이 빨라졌다. 5전 때 나의 베스트 랩타임은 2분 20초 5. 그리고 오늘 첫 연습 때 기록한 랩타임은 2분 17초 4. 개인적으로 기분이 좋았던 것은 금호타이어를 끼우는 다른 드라이버들은 약 2초 빨라졌는데, 나만 혼자서 3초가 넘게 빨라졌다는 것.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지난 태백 나이트 레이스 이후로 페이스가 조금 올라간 느낌이 들었다. 오늘 하루 30분씩 주어지는 4번의 연습 타임이 유일하게 내가 오롯이 ‘선수’로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난 ‘감독’ 타이틀은 잠시 접어두고 최선을 다해서 나의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세팅을 점검하고 데이터를 살펴보았다. 이데 유지 선수는 언제나 바쁘다. 일본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가지고 와서는 그것에 대한 세팅 값을 찾기에 여념 없다. 그리고 지난 경기부터 합류한 정의철 드라이버. 그는 정말 무서운 속도로 적응하고 있다. 지난 태백 경기 때와 다르게 이데 유지의 랩타임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
 랩타임도 랩타임이지만, 지난 경기 이후로 미캐닉들의 호흡이 잘 맞아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뭔가 알 수 없는 삐걱거림이나 어수선함이 있었는데 이제야 서로가 서로를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미캐닉들을 뒤에서 바라보는 쏠쏠한 재미. ‘이런 건 나만 느낄 수 있는 거겠지?’라고 생각하며 잠시나마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지막 타임이 끝났을 때 자료를 모아보니 내일 있을 예선전에서 이데 유지와 정의철 선수 모두 TOP 3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난 6위권 정도에 들어갈 것으로 보였는데, 자꾸 욕심이 났다. “0.5초 정도만 빨라진다면 TOP 4도 바랄 수 있을 것 같은데…. 바꿔볼까? 아니야, 이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알잖아? 7게임 만에 조금 페이스가 올라갔다고 자만하는 거 아니야?” 동전 뒤집듯 마음이 계속 오락가락하다 결국 달콤한 유혹이 날 집어삼켰다. 나는 차의 하부 세팅을 완전히 바꾸는 과감한 결정을 했다. 그것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내일 알 수 있을 것이다.

 

토요일 예선, 날씨 맑음

난 오후에 펼쳐질 예선을 앞두고 오전부터 마인드 컨트롤 중이었다. 바꾼 세팅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상 가능한 차의 반응을 상상하며 그에 따른 방법을 마음속에서 실행했다. 특히 정의철 선수는 폴 포지션도 가능한 랩타임이었기에 상당히 긴장한 듯 보였다. 말없이 자신의 데이터만 반복해 점검하고 있었다. 오후 3시, 드디어 피트레인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었다. 난 가장 먼저 뛰어들어갔다. “가보자! 16초 후반대로만 들어오자!” 뭔가 될 것 같은 이 기분 좋은 예감은 고속 시케인 구간인 7번 코너에 진입하는 순간 독이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뭐지? 이 반응은?’ 왼쪽 앞 타이어에서 격렬하게 시작된 언더스티어는 뒷바퀴까지 춤을 추게 만들며 차의 네 바퀴가 모든 그립을 잃고 바깥쪽으로 차를 미끄러트렸다. 그리고 마지막 코너까지 차의 반응은 언제나 예상보다 한계가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로깅 시스템에 찍힌 랩타임은 2분 19초 8. 믿을 수 없었다. “이렇게 차의 흐름을 바꿔놓을 정도로 세팅을 바꾼 게 아닌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 내가 자초한 일. 최대한 빨리 적응해야만 했다. 다음 바퀴는 2분 18초 9. 1초를 당겼지만 터무니없는 기록이었다. 타면 탈수록 타이어의 그립은 떨어져갔고 난 용을 써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어택을 했다. “내가 미쳤지, 왜 세팅을 바꿨을까?” 결국 난 금호타이어를 사용하는 5명의 드라이버 중 가장 느린 2분 18초 8이라는 기록으로 예선을 끝마쳤다. 순위는 9위. 허무했다. 연습 때 베스트인 17초 4만 기록했어도 예선 6위인데…. 난 예선이 끝나자마자 치프 미캐닉과 이렇게 차의 흐름이 바뀔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데이터를 점검했는데, 놀랍게도 원인은 세팅 변화에 있지 않았다. 데이터 로깅에는 수많은 데이터가 기록된다. 액셀과 브레이크 양, 조향각도는 물론이고 타이어의 온도 그리고 서스펜션의 범프, 리 범프 양도 기록되는데 내 차의 서스펜션 움직임이 뭔가 정상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정밀하게 차량을 확인해보니 뒤쪽 스태빌라이저가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다시 데이터를 확인해보자 정확히 첫 어택 직전의 마지막 코너에서 부러진 것이 확인되었다.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부서지다니….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결승에서 부서지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폴 포지션을 목표로 삼았던 이데 유지와 정의철 선수는 모두 베스트 랩타임을 기록했지만, 아쉽게도 그게 첫 번째 자리는 아니었다. 이데 유지는 선두에 0.4초 뒤진 랩타임으로 3번째 그리드를 차지했고, 놀랍게도 정의철 선수가 선두에 0.3초 뒤진 랩타임으로 두 번째 그리드를 차지했다. TOP 3 중 두 명의 드라이버가 엑스타 레이싱팀이라니!!! 물론 그것이 1등과 2등이 아니라는 게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정말 빠른 속도로 적응해서 이데보다 빠른 랩타임을 기록한 정의철 선수가 보배처럼 느껴졌다.

 

일요일 결승, 날씨 흐림

최종점검을 하는 웜업 주행에서 난 다시 17초대를 기록했다. 세팅이 문제였던 게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이데는 일단 일본에서 가지고 온 새로운 시스템을 전부 빼버렸다. 정의철 드라이버보다 느렸다는 것이 계속 마음에 걸린 걸까? 티는 내지 않았지만 신경 쓰이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 정의철은 덤덤했다. 사실 이날 가장 큰 변수는 날씨였다. 태풍 봉풍의 끝자락에 걸쳤던 이곳은 오전에 비가 오진 않았지만 강한 바람과 회색 구름들이 경기장을 뒤덮고 있었다.  사실 이런 날씨가 가장 괴롭다. 어쩌면 경기 중간에 피트 스톱해서 타이어를 바꾸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 정말 40분짜리 스프린트 레이스에서 엄청난 변수를 던져주는 상황이 올까 봐 난 하늘을 바라보며 제발 경기가 끝나는 오후 4시 이후에 비가 오기를 빌었다. 오후 3시. 모든 스톡카들이 격렬한 엔진음을 내뿜으며 1번 코너에 뛰어들었다. 난 마음이 급했다. 어제의 느린 랩타임을 만회하고 싶은 욕심만 가득했었다. 결국 사고를 쳤다. 긴 직선구간 뒤에 급격한 풀 브레이킹을 해야 하는 3번 코너 진입에서 결국 브레이크가 록이 걸려서 경쟁팀의 차를 추돌하고 말았다. 아뿔싸. 고의는 아니지만 어쨌든 나의 실수. 결국 나에게 받힌 차는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사실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 레이스 상황에서의 충돌은 화려한 눈요기지만 드라이버에겐 경기 내내 가혹한 시간을 던져준다. 자꾸만 충돌할 때의 그 상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저 멀리 이데 유지가 1위로 치고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오케이. 잘하고 있구나. TOP 3가 끊임없이 순위가 바뀌는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었고 난 6위까지 올라갔다. 그때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코너에서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랩타임이 25초 때까지 곤두박질쳤다. 그저 앞의 스톡카와 벌어지지 않는 것을 바라보며 ‘그래, 나만 미끄러운 게 아니야’ 위로 삼으며 집중만 할 뿐이었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비가 많이 내리면 바로 피트인해서 타이어를 바꿔야 하는 상황.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는 계속해서 부슬부슬 올 뿐이었다. 노면은 젖었지만 컨트롤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고 결국 드라이버의 담력이 승부를 결정짓는 상황이었다. 선두권에서 이데는 2위로 달리고 있었고 아쉽게도 정의철 선수는 드라이버 샤프트 파손으로 피트인을 했다. 내심 꿈꿨던 더블 포디움이 완전히 무산되었다. 난 지난번 태백 경기처럼 후반 페이스가 정말 좋았다. 그리고 기를 쓰고 달린 결과, 한 대를 더 추월해 4위로 피니시를 했고 이데는 3위로 포디움 피니시. 나쁜 결과는 아니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더블 포디움도 못했고, 난 태백 때와 마찬가지로 포디움 바로 앞에서 발을 돌려야 했으며, 이번 결과로 인해 이데 유지의 종합 포인트 3위 목표도 자력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사실 욕심일 수 있다. 엑스타 레이싱팀이 처음 만들어질 때 올해 목표는 시즌 중 한 번의 우승, 그리고 종합 포인트 5위였으니까. 누군가에게는 복에 겨운 욕심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아직 궤도에 오르지 못한 팀의 발버둥일 수도 있지만 일단 레이스가 시작되면 우승을 목표로 삼는 것은 당연한 것. 이제 남은 것은 단 한 번의 경기. 나의 목표는 수정되지 않는다. 원 투 피니시. 시상대의 맨 꼭대기와 두 번째에 우리 엑스타 레이싱팀 선수가 올라서서 환하게 웃는 장면을 만들고 싶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 레이스 상황에서의 충돌은

화려한 눈요기지만 드라이버에겐 경기 내내 가혹한 시간을 던져준다.

 

 

경기 슈퍼레이스 8라운드

장소 영암 F1 서킷
일시 2014년 10월 31일~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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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지막 경기, 마지막 바퀴. 난 내 꽁무니에 4위 차를 바짝 붙여놓은 채로 디펜스 라인으로만 주행을 하며 가까스로 추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코너. 저 멀리 휘날리는 체커기가 보였다. 나의 개인적인 목표였던 포디움 입성이 현실이 되는 순간. 미캐닉들은 피트월 담벼락에 얼굴을 내밀고 박수를 보내주고 있었다. 올해 10위를 시작으로 8위, 6위, 5위, 4위, 그리고 드디어 3위에 올랐다. 내가 포디움에 오르다니! 생각 같아서는 소리를 질러 마땅한 순간이지만, 안타깝게도 난 웃을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웃음이 나오지도 않았다. 시상대로 가는 내내 고개를 제대로 들기가 힘들었다.
슈퍼레이스는 예선전에 6개의 타이어를 마킹해야 한다. 그리고 예선부터는 마킹된 타이어만 사용할 수 있다. 개수만 다를 뿐 대부분의 레이스가 이런 규정이 있다. 문제는 하루뿐인 금요일 연습주행 때 비가 와서 레인 타이어만 테스트가 진행되었으며, 새로 지급된 드라이 타이어는 데이터가 전무한 상황에서 마킹을 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타이어는 지난 경기 때와 같은 것, 그리고 새로 지급된 두 가지 타이어 이렇게 세 가지였다. 우리는 타이어 선택을 하기 위해 고심의 끝을 달렸다. 이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난 지난번 경기에 썼던 타이어를 그대로 쓰겠어. 데이터가 없는 타이어는 너무 위험해.” 일리가 있었다. 나 역시도 감독으로서 3명 중 1명은 검증된 타이어라고 할 수 있는 지난 경기 타이어를 쓰길 바랐다. 하지만 지난 경기 타이어가 경쟁력이 강력하진 않았다. 온도가 낮을 때 디그레이닝되는 현상이 있었고, 경쟁사 대비 빠르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새로 지급된 타이어는 연구소에서 고민을 거듭해 지난 타이어보다 더 업그레이드한 것이었다. 테스트를 못하긴 했지만, 어쨌든 개선된 타이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데 유지는 정말 일본 사람 그 자체였다. 안전한 게 어쨌든 우선순위 1위였다.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우리 3명 중 가장 강력한 드라이버는 이데 유지다. 그런 그에게 지난 버전 타이어를 쓰게 하는 것이 찜찜해서 계속 시간을 끄는데 결국 이데가 날 설득시켰다. 이데는 지난 버전 타이어에 마킹을 받았다.
시상대로 가는 길에 끊임없이 이때 상황이 무한 반복되며 후회가 솟구쳤다. 그때 이데 입을 틀어막고 얼굴을 구기면서라도 새로운 버전의 타이어를 선택하라고 했어야 했는데…. 감독이 선수를 설득시켜야지, 오히려 선수에게 설득당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결정이 결국 이데 유지를 제대로 못 가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이데 유지는 예선에서 근소한 차이로 3위를 했지만, 지난 경기보다 더 차가운 노면으로 인해 경기 중반, 타이어 그레이닝이 심각해졌고 결국 스핀과 추돌이 이어져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올해 우선순위 1위는 언제나 레이싱이었다.

무엇보다 먼저였고,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더욱 허탈감이 느껴지는 걸까.

 

 

정의철 드라이버는 새로 지급된 타이어 중 좀 더 소프트한 것을 신었다. 그리고 나는 나머지 하나를 쓰기로 했다. 어차피 데이터가 없었으니 한곳으로 모는 것보다는 많은 데이터를 뽑는 게 더 중요하니까. 나와 정의철은 사용해본 적 없는 타이어로 예선을 들어가니 성적이 좋지는 않았다. 정의철 예선 6위, 나는 10위. 하지만 코너링 그립이 예전 버전보다 월등히 좋아진 게 확실히 느껴졌다. 예선 때 느낀 점을 가지고 차 세팅을 타이어에 맞춰주고 일요일 결승. 정의철은 출발과 동시에 이데 유지 뒤에 붙을 수 있었다. 그리고 치열하게 4위권 싸움에 뛰어들었다. 또 그 바로 뒤에는 나도 따라붙었다. 치열하게 경쟁팀과 순위를 주고받던 과정에서 갑자기 무전이 들어온다. “미션 이상. 5단만 들어갑니다.” 아… 두 번 연속 레이스카 트러블이었다.  아니, 정확히 4번이다. 지난 경기 연습 중 왼쪽 드라이브 샤프트 파손, 결승 중 오른쪽 드라이브 샤프트 파손, 이번 경기 연습 도중 미션 파손, 그리고 결승 중 다시 미션 이상. 운이라고 치기에도 너무 가혹하고, 차 상태로 책임을 돌리기에도 너무 잦다. 이건 틀림없이 드라이버의 드라이빙과 관계가 있다. 그 순간, 금요일 연습 때 확인했던 데이타 로깅에서 언제나 조금 다른 그래프를 그리던 정의철 드라이버의 힐앤토 구간이 문득 떠올랐다. ‘의철이는 조금 다르게 힐앤토를 치네. 이래도 차에 데미지가 안 가나?’라고 무심하게 생각해버린 그 순간. 감독은 예민해야 했다. 그것을 그냥 지나쳤으면 안 되는 거였다.
시상대로 가는 길은 그날따라 유난히 멀었다. 이렇게 아이러니할 수 있는 걸까. 엑스타 레이싱팀을 창단하면서 많은 것을 꿈꿨고, 그중에는 분명 내가 포디움에 서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결과를 놓고 보자면 그래도 웃음을 터뜨리며 ‘나라도 이렇게 살아남아 시상대에 서서 참 다행이야’라며 나보다 더 상실감에 젖어 있을 팀원들을 위로했어야 하는데 그저 허탈한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시상대에 제법 서봤지만, 이런 감정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 웃을 수 없는 시상대라니….
이렇게 2014년 시즌이 끝났다. 이데 유지는 8게임 중 1번의 우승을 포함한 총 4번의 포디움 그리고 4번의 리타이어. 정말 극과 극의 결과를 내버렸다. 종합순위는 5위. 그리고 나는 8게임 중 7번의 포인트 피니시 1번의 포디움으로 조금씩 스톡카에 적응해나가는 그래프를 그려주며 종합순위 7위로 마무리했고, 정의철 드라이버는 3번의 포인트 피니시 한 번의 리타이어, 종합순위 9위로 마무리했다. 올해가 창단 해이길 천만다행이었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올 초 적어놓았던 목표 성적만 딱 달성했을 뿐이었다.
마치 공연이 끝난 후의 허탈감 같은 게 밀려왔다. 처음 엑스타 레이싱팀이 만들어지고 감독 역할까지 맡아야 된다고 했을 때의 그 설렘, 흥분, 미치도록 긴장했던 첫 게임. 세 번째 시합 만에 만들어낸 우승. 이어지는 이데 유지의 연속된 리타이어, 그리고 이번 경기 나의 포디움까지…. 정신을 차려보니 시즌이 끝나 있었고 하나씩 떠오르는 기억들이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올해 우선순위 1위는 언제나 레이싱이었다. 무엇보다 먼저였고,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더욱 허탈감이 느껴지는 걸까. 난 컴퓨터 앞에 앉아 1년 동안 감독으로서 잘한 일과 못한 일을 표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기억나는 대로 적어놓고 그것을 순서대로 정리하고 보니, 그제야 좀 알 것 같았다. 감독이 왜 감독이어야 하며, 팀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이제 막 시즌이 끝났는데 난 이미 2015년 첫 게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