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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맨의 하루

서울에 있는 여섯 개의 호텔에서 만난 도어맨 여덟 명. 그들이 여는 것은 대형 세단의 문만이 아니었다

2014.11.13


이남훈(12년)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본래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다 보니 한 번 본 얼굴은 잘 잊어먹지 않게 됐다. 일 때문에 생긴 습관이다.

외국에서 몇십 년 살다가 한국에 온 손님이 있었다. 어릴 적 동네 문방구에서 사먹었던 불량식품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해서 안내를 해드렸는데 그날 저녁 너무 고맙다고, 덕분에 추억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하더라.

이 일의 매력은 차 문을 열어주는 순간 눈웃음과 함께 나누는 짧지만 임팩트 있는 얘기다.

단골손님들에 대한 얘기는 본인이 직접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내가 하는 일이 이런저런 일인데”라거나 “나는 뭐 하는 누구야”라고 말씀을 해주셔서 알게 된다. 정 궁금하면 기사를 통해 듣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얼굴이 명함인 손님들도 다수 온다.

내가 쓰고 있는 모자는 도어맨이란 표시다. 발레파킹의 경우는 모자가 없다. 도어맨은 호텔 게이트에서 일어나는 일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엔 발레파킹과 벨보이가 얘기를 주고받으며 손님을 안내해야 현관이 꼬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혼잡한 호텔은 ‘이 호텔 장사 잘되네’라는 인식보다는 ‘왜 이렇게 어수선해’라는 인식을 줘 마이너스 100점이다.

 


김대현(1개월) 

그랜드 앰버서더 서울

 

나는 풋내기 도어맨이다. 1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아 아직도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 요즘 중점적으로 교육받은 부분은 주차다. ‘호텔 로비 바로 앞에 댈 때는 연석에서 5센티미터 떨어져서 대라’ ‘인도 쪽에는 사람이 다닐 만큼 공간을 남기고 대라’처럼 지켜야 할 게 몇 가지 있다. 차가 들어오면 보통은 뒷자리를 여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가끔 조수석에 앉아서 오는 경우도 있다. 처음엔 구분을 못해 헷갈렸는데 운전자의 자세를 보고 이젠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센스 있는 기사들은 들어올 때 눈을 마주치며 어디에 앉은 사람이 주인이라는 신호를 주기도 한다.

대학교에서는 패션학과를 졸업했다. 호텔 일에 뜻이 있다기보다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데 좋은 시작점이 될 것 같아서 선택했다. 도어맨으로 근무하면서 서비스 마인드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잘한 선택 같다.

서울에 돌아다니는 모든 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다. 보통 고급차나 스포츠카가 들어오면 꺼려지기 마련인데 나는 더 신난다. 내가 언제 그런 차에 앉아보겠는가. 하지만 조심스럽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최소 책임비만 낸다 해도 월급이 그냥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상권(21년) 

르네상스 서울

 

1993년에 들어왔으니 벌써 햇수로 20년이 넘었다. 호텔이 문을 연 게 지난 1988년인데 그때 오픈 멤버도 아직 도어맨으로 근무하고 있다. 총 여덟 명의 도어맨이 있는데 그중 막내가 38살이다. 그 친구도 경력이 10년이다.

도어맨이라는 직업의 특성은 한번 일하면 10년은 기본으로 있다는 거다. 그리고 보통 일을 시작한 호텔에서 끝까지 있는다. 그러고 보면 분명 이 일은 매력이 있는 것 같다.

호텔마다 다르겠지만 이 세계에도 손님을 응대하는 매뉴얼이 있다. 차가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열다섯 발자국 전에 가벼운 목례를 하고 다섯 발자국 전에 인사를 한다.

이 일 하면서 별일 다 겪어봤다. 18년 전쯤인가. 손님의 차를 도난당한 적이 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아무리 같은 호텔 직원들 간이라도 수군댈 만한데 서로 자기 일인 양 발벗고 차를 찾으러 나섰다. 결국 4일째 되던 날 그 차가 신촌 어디에 있다는 제보를 받고 쫓아갔다. 근데 눈앞에서 놓쳤다. 속이 바싹 타 들어가고 화병이 날 지경이었는데 또 다른 직원의 제보로 결국 찾게 됐다. 그 범인을 못 잡은 것이 못내 아쉽다.

손님 차가 바뀐 경우도 있다. 나눠준 티켓 두 장이 뒤바뀐 거다. 마침 대리기사가 차를 가지러 온 탓에 그도 이 차가 맞겠거니 하고는 그냥 가져갔던 거다. 차 앞의 연락처로 전화해서 차를 제대로 바꾼 웃지 못할 경우도 있다.

이 일을 하다 보니 사람에 대한 촉과 감이 생기더라. 차에서 내리는 분위기나 사람의 얼굴만 봐도 그 사람의 성향을 10 중 5, 6은 맞힌다.

호텔 오픈 때부터 단골손님인 분들이 많다. 아까 말한 도난차의 차주도 그런 VVIP 중 한 분이다. 그런데 작년에 작고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를 오히려 위로해줬던 분인데 기분이 묘하더라.


최문수(18년) 

해밀턴

 

도어맨은 단순히 호텔에서 일어나는 일만 살피는 게 아니다. 호텔이 위치한 동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까지 꿰뚫어볼 필요가 있다.

장기투숙 손님들이 많다. 이태원이라는 위치 특성상 대중교통 이용이 쉽고 여러 문화가 섞여 있다는 것이 투숙객에겐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손님이 호텔에 올 때 가장 먼저 맞아주고 가장 나중에 인사를 하며 떠나 보내는 사람도 우리다. 그런 까닭에 체크아웃하고 나가는 손님의 표정을 보면 이용의 만족도를 알 수 있다.

용산 미군부대가 평택으로 이전하기 전까진 미군 손님들이 굉장히 많았다. 군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차를 가져오기보단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매너가 대체로 좋았다. 그들이 떠나간 자리를 이제 중국, 일본 관광객이 메우고 있다.

인종에 따라 태도나 요구사항이 특별히 다른 건 아니다. 호텔을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수준의 손님이라는 얘기도 되는 것 같다. 대체로 매너도 좋고 젠틀하다.

 


이진복(30년)·정우철(5년)

더 플라자

 

30년 경력이면 아마 현직 도어맨 중에 가장 오랜 경력이 아닐까? 오래 있다 보니 기억에 남는 일보다는 이젠 기억나지 않는 일이 훨씬 많아졌다. 우리는 접점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라 더 그렇다.

손님의 위치가 바뀌고 나서도 꾸준히 찾아줄 때 기분이 남다르더라. 예컨대 후보자 신분일 때부터 쭉 봐오던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서도 찾아줄 때 감회가 새롭더라.

지금은 도어맨, 벨보이, 발레파킹이 구분돼 있어서 각자 하는 일에 경계가 있지만 전에는 도어맨이 혼자서 다 했다. 차 문 열어주고, 주차해주고, 짐 받아서 올려주고까지.

말 그대로 전화기가 불 나도록 뛰어다니던 때가 있었다. “로비에 손님 왔으니 뛰어와라”부터 “몇 호 누구 내려가니 차 대기시켜라”라고 말하는 것까지.

블루투스는 신세계다. 귀에 꽂고만 있으면 다 연결이 돼서 듣고 말하고 자유롭게 할 수 있지 않나. 격세지감이다.

호텔은 변하지 않는다. 레노베이션을 하고 유니폼을 바꾸고 하지만 드나드는 사람들, 그리고 벌어지는 일들은 똑같다. 거기에 호텔의 매력이 있다. 시간을 초월한다.

과거엔 서울 각 호텔에 있는 도어맨들끼리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할 정도로 유대관계가 강했다. 지금은 흐지부지됐지만 여전히 곳곳에 누가 있는지 정도는 서로 알고 있다.

시대가 많이 변해 도어맨도 이제 전문 용역업체를 쓰는 호텔들이 늘어나고 있다. 개인적으로 안타깝다. 도어맨은 단순히 차 문만 열어주는 역할이 아닌데 말이다.

아무리 음식이 맛있어도 반갑게 어서 오시라고 맞아주지 않는 식당은 먹고 나서도 개운치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도어맨은 호텔의 얼굴이다.

 


오승교(20년)·박재범(21년) 

밀레니엄 힐튼

 

페라리 같은 차는 되도록이면 직접 주차하게끔 유도한다. 앞에 주차돼 있는 다른 차를 빼서 자리를 만들어준다. 그래도 주차해달라고 하면 해준다. 람보르기니는 아예 오지 않는다. 바닥이 워낙 낮아서 다 긁힌다.

신용카드 덕에 호텔 이용 고객의 평균연령이 낮아졌다. 무슨 소리냐고? 신용카드를 이용한 무료 발레파킹이 활성화되다 보니 호텔 주차장만 이용하는 손님이 많아진 까닭이다. 호텔 입장에서는 좋은 것 같다. 고루하고 권위적인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차에 스크래치가 있는지 없는지도 살핀다. 가끔 의도적으로 덮어씌우려는 손님들이 있다. 우리가 얼마나 차를 몬다고 그러겠나.

옆에 카지노도 있고 위치가 명동과 가깝다 보니 중국 관광객도 많이 오지만 여전히 비즈니스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월등히 많다.

여덟 명의 도어맨이 있는데 전부 스무 살 때 들어왔다. 30년 된 사람도 있다. 젊은 친구들을 보면 호텔관광학과를 졸업한 뒤 도어맨으로 시작해서 호텔 경영 쪽으로 가려는 꿈을 가진 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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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더 플라자,해밀턴,르네상스 서울,밀레니엄 힐튼,호텔

CREDIT Editor 이재림 Photo 유진호 출처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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