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나타의 발전이 눈부시다. 만년 뒷바라지만 해야 할 것 같던 그랜저의 그늘을 벗어나 이젠 현대자동차의 대표 모델이 됐다. 현대차 그룹을 넘어 대한민국 세단의 기준이자 대표 자동차의 위치까지 오른 쏘나타에 대해 박규철 편집위원, 나윤석· 류청희 칼럼니스트가 이야기를 나눴다.
박규철 1985년에 1세대가 나왔으니, 벌써 30년이 다 됐네. 첫 번째 쏘나타는 스텔라와 섀시를 공유했어. 달랐던 건 조금 더 고급스럽게 만들었다는 거지. 스텔라 고급형이라고나 할까? 쏘나타의 탄생 목적은 미국 시장에서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혼다 어코드와 토요타 캠리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 모델이었어. 이제는 누구도 부정 못할 한국 세단의 기준이 됐지만 현대자동차가 한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려고 차를 개발한 건 아니야. 미국 시장에 먹힐 차를 만들었던 건데 우리가 자연스레 혜택을 보고 있는 거지.
류청희 쏘나타는 이제 알찬 차가 된 것 같아요. 박 위원 말씀처럼 태생 자체가 고급스러우면서 대중적인 차였잖아요. 고급과 대중이라는 두 단어의 교점을 정확히 파고들었기 때문에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세대를 거듭할수록 이율배반적인 두 개념을 함께 가져가는 건 쏘나타에게 걸림돌이었죠. 속은 안 그런데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 건 가식이나 마찬가지잖아요. 하지만 이제 쏘나타는 그 걸림돌을 뽑아낸 것 같습니다. YF 때부터 느꼈지만 6, 7세대 쏘나타는 담백해졌어요. 그랜저 덕이죠. 쏘나타의 앞길을 막던 그랜저가 이제는 짐을 덜어주고 있는 모양새예요.
나윤석 LF도 혁신적으로 발전한 쏘나타긴 하지만 YF만큼 파격적이진 않아요. YF는 현대차의 기술력과 도전정신을 모두 한 단계 뛰어오르게 했죠. 디자인적인 모험을 통해 현대차는 큰 재미를 봤을 겁니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도전은 해볼 만하다는 것을 배웠으니까요. LF가 내세운 콘셉트가 ‘기본기로 돌아간다’라는 걸 보면 쏘나타를 어떻게 포장해야 할지도 정확히 파악한 것 같습니다.
박규철 디자인 하니까 갑자기 떠올랐는데, 이제 캠리와 어코드는 LF 쏘나타에게 적수가 안 될 것 같아. 파격적인 변신을 했던 YF를 보고 놀라서 만든 디자인이 올해 말 출시할 신형 캠리인데 공개된 사진으로 봐선 YF 느낌이 강하거든. 이미 디자인적으로는 한 세대가 벌어진 것 아닐까?
나윤석 네, 쏘나타는 이제 더 이상 일본 세단보다 아래로 봐야 할 차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은 면이 더 많아요. 이제 다음 타깃은 독일 폭스바겐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니까요.
박규철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국에선 캠리가 더 잘 팔린다는 거야. 원인은 현대차 브랜드 이미지의 부재가 아닐까? 역사적인 부분은 이미 7세대에 이른 만큼 점점 채워질 테고. 아 참, 또 결정적인 한 가지가 있네. 현대는 여전히 싼 차라는 이미지가 강해. 이걸 어떻게 없애느냐가 큰 문제지. 그렇게 볼 때 수년 전부터 북미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는 10년 워런티 제도는 탁월했어. 말이 10년이지, 그 정도면 차를 구입해서 평생 보증해주겠다는 것과 같은 얘기니까.
류청희 쏘나타는 이제 현대차이면서 하나의 브랜드가 됐어요. 그동안 4도어 세단 한 가지만 나온 점을 생각해볼 때 획일적인 것을 벗어나 다양화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폭스바겐 R라인처럼 보디킷을 활용하거나 아예 R처럼 이미지를 리딩할 수 있는 고성능 가지치기 모델을 내놓는 것도 방법이죠. 또 BMW처럼 엔진 라인을 여러 가지로 다양화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고요. 세단으로 그치지 않고 왜건이나 쿠페 등 형태적인 변화를 주는 건 아직 먼 얘길까요?
나윤석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한국차 하면 어떤 게 있더라”라고 말할 때 처음 튀어나오는 차가 쏘나타가 돼야 해요. 이젠 단순히 세대 변경을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국 세단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세단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박규철 현대차의 이미지를 이끌거나 올릴 수 있는 아이코닉한 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 나도 한 표야. 그리고 지속적인 문화행사나 최근에 흘러나오고 있는 자동차 박물관 건립처럼 이제 자동차 회사에 그치지 않고 자동차 문화를 만드는 회사로 가야지. 그 시작이 쏘나타고.

우리 기억 속에 있는 현대차 그랜저
그랜저를 탈 때마다 생각한다. ‘이 차는 진짜 편하다.’ 며칠 전에는 동료 기자들에게 이런 말도 했다. “나 어쩌면 그랜저 살 거 같아.” 지금 내가 딱딱한 소형 해치백을 타고 있어서 더 그랬을지 모른다. 사실 그랜저는 6세대까지 오면서 차체 형식과 구동계의 변화가 없었다. 그만큼 기술이나 노하우가 많이 축적됐을 것이다. 쏘나타와 아반떼도 마찬가지지만 차가 크고 비싼 그랜저가 더 많은 고급 기술을 넣을 수 있고 변형과 변경의 여지도 많다. 그만큼 소비자의 취향과 트렌드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지금의 그랜저 HG는 승차감이 부드러운 것은 물론, 충격을 흡수하는 과정이 꽤 세련됐다. 실내는 더없이 조용하다. 디젤이 휘발유보다 조용한 거 같았다. NVH에 더 많이 투자한 덕분일 것이다. 차가 큰데 운전자에게 중압감을 주는 구성도 아니다. 시야가 넓은 것은 자세를 잡기도 편하다. 뒷자리 승차감도 준대형 세단으로서 절대 빠지지 않는다. 다만 핸들링이 약간 떨어지지만, 현대가 차체 구조 강성에 많은 투자를 하는 만큼 차기 모델에서는 이것도 웬만큼 해결되리라 본다. 아슬란이 나오기 전까지 그랜저는 현대차의 앞바퀴굴림차 중에서 가장 크고 비싼 차였다. 한때는 한국에서 가장 비싸고 큰 차였다. 지금은 그랜저보다 비싸고 좋은 차가 많지만 지금도 그랜저는 한때 현대차의 기함이었던 기품을 잃지 않았다. 글•이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