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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 세 사람의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이다. 24시간의 폭력적인(?) 비행 여정을 앞두고 있는 이들의 얼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나도 그러했을 것이다. 기쁨과 설렘은 잘 감춰지지 않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공항에서 처음 만났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홍콩- 남아프리카공화국-나미비아까지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현지 시간으로 5월 21일 오전 10시 30분경. 빈트후크 공항에 내리자마자 모두 입이 떡 벌어졌다. 하늘이 너무 파랗다. 구름 한 점 없다. 햇살은 따갑지만 습도가 낮아 쾌적하다. 그리고 정말 멀리 보인다. 대기오염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 지평선이라는 것도 봤다. 비행 여정의 피곤은 온데간데없었다. 모든 것이 생경하다. 이곳은 정말 외국 같았다.

 

미니밴을 타고 오카푸카 목장(Okapuka Ranch)까지 가는 여정도 흥미로웠다. 길가에 사슴 비슷한 것도 보이고 원숭이도 있다. 현지인들은 섭씨 25도인데 코트에 목도리까지 두른 이도 보인다. 지금 이곳은 겨울이란다. 

 

오카푸카 목장은 독일인이 운영하는 리조트다. 리조트 안에 사파리가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다. 정문을 통과하고도 한참을 달려야 리셉션과 레스토랑이 보인다. 리셉션까지 가는 길 좌우에도 타조와 사슴 종류가 목을 길게 빼고 우리를 주시한다. 레스토랑에 도착하니 독일인 인스트럭터 듀크(Duke)와 함께 오스트리아,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참가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들보다 레스토랑 앞마당의 멧돼지 떼에 시선이 쏠렸다. 사육이 아니라 야생 흑멧돼지다. 그리고 가까이 가면 공격할 수 있다고 한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쉬지도 않고 바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운전자세 등에 대한 교육을 받고 곧바로 리조트 뒷산을 타기 시작했다. 산까지 가는 길에 작은 호수에서 악어를 봤고 ‘사자가 있으니 주의하라’는 표지판도 눈에 들어왔다. 여긴 진짜 야생이다. 산길을 잘 다듬어놓았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흙바닥에 자갈과 모래가 뒤섞인 오프로드다. 휠 슬립이 일었고 구덩이에서는 아주 천천히 바닥을 보면서 운전해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산을 올랐다. 시계에 있는 고도계를 보니 해발 1800미터가 넘는다. 이런 산을 서너 개 넘었다. X5는 의외로 오프로드를 잘 달렸다. 오프로드 타이어를 끼우고 차체를 5센티미터 높였다. 그리고 차체 보호를 위해 앞 범퍼와 차체 바닥에 2센티미터 두께의 철제 프로텍터를 붙였다. 그래서 차체를 3센티미터 높인 효과를 낸다. 

 

산을 넘으면서 얼룩말 떼를 봤다. 평원에만 사는 줄 알았는데 이런 산까지 올라와 풀을 뜯고 있었다. 놀라웠다. 그런데 얼룩말도 놀랐는지 길게 줄지어 선 X5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어쩌면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X5를 포식자로 생각해 줄행랑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산을 몇 개 넘어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랐다. 차에서 내리니 다과상이 차려진다. 맥주캔 하나를 홀짝이며 머나먼 지평선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본다. 그렇게 나미비아의 첫날이 저물고 있었다. 24시간의 여정 후 쉬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산을 탔는데 피곤하지가 않다. 참가자들도 생기발랄이다. 전혀 오염되지 않은 공기와 자연으로부터 치유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산을 몇 개 넘어 리조트로 돌아왔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 은하수를 봤다. 이렇게나 많은 별을 본 적이 없다. 그날 밤은 동물 울음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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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이상한 동물 소리가 들리던데?” “그거 사자 울음소리야.” 나미비아에 사는 여행 가이드 조지의 말에 등골이 오싹했다. 어제 각종 야생동물을 봤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걱정할 거 없어. 그 사자는 우리에 있으니까.” 다행이었다. 소리만 들어서는 정말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둘째 날 오전은 사파리 투어다. 조지가 운전하는 특수 개조된 랜드로버 디펜더를 타고 각종 야생동물을 만난다. 처음 우리를 맞이한 동물은 흑멧돼지. 목이 짧아 무릎을 꿇고 먹이를 먹는다. 그리고 두 마리의 악어를 5미터 앞에서 봤다.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디펜더와 악어 사이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었다. 대초원을 뛰노는 스프링복과 큰 뿔을 자랑하는 쿠두, 목이 길어 쉽게 찾을 수 있는 기린 등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코뿔소. 생각보다 크고 뿔은 무시무시하다. 동물원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동물이 여기엔 그냥 있다. 한국 참가자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참가자들도 연신 셔터를 누르느라 바쁘다.

 

오후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산길 주행이다. 듀크 말로는 “어제보다 좀 더 어렵다”고 한다. 실제로 경사가 어제보다 심하고 길은 덜 다듬어졌다. 그렇게 참가자의 운전 실력을 높인다. 더불어 듀크는 이렇게 말했다. “매일매일 어려워질 거야. 그리고 마지막에 사막을 달리는 거지. 그러니 지금 오프로드 감각을 익히지 않으면 사막을 제대로 즐기기 힘들어.” 그는 랠리 드라이버다. 이런 길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달려본 베테랑이다. 그의 말만 잘 따르면 별문제 없었다. 

 

한참 동안 산길을 달리고 물길을 헤쳤다. 오늘은 정말 큰 기린 한 마리가 산허리에서 우리와 마주쳤다. 떼를 지어 다니는 녀석으로 알았는데 이렇게 산속 깊숙이에도 기린이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하긴 여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 긴 오프로드 코스를 개발했는지도 놀랍고 갑자기 튀어나오는 산짐승도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BMW X5의 오프로딩 성능에 놀랐다. BMW X5는 도시형 SUV로만 생각했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오프로드를 잘 달렸다. 등판 능력이 뛰어났고 네 바퀴의 구동력을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배분하면서 꾸준하게 접지를 유지하는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참가자들은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하다”며 “벌써 이틀이 지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우린 아직 여기에 엿새나 더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사실 오프로드를 많이 달려본 나도 꽤 흥미진진한 경험이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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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 모두가 짐을 꾸려 레스토랑에 집합했다. 오늘은 오카푸카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긴 여정을 떠나야 한다. 새로운 오프로드 코스를 탐험하기 위해서다. 나미비아는 차가 좌측통행이지만 통행량이 많지 않다. 듀크를 따라 한참을 달렸다. 대략 300킬로미터를 달린 것 같다. 듀크가 멈춰선 곳은 붉은 모래가 얕게 깔린 비포장길. 이곳에서 참가자들은 안전운전에 대한 특별한 교육을 받았다. 바로 풀브레이킹과 슬라럼이다. 시속 40, 60, 80킬로미터로 달리다가 풀브레이킹을 하면서 차의 속도에 따른 제동거리를 몸으로 체험한다. 슬라럼에서는 차의 무게 이동을 몸으로 느끼면서 뒷바퀴가 흐르기 전에 카운터 스티어를 하는 연습을 한다. 듀크 말로는 “이 모든 것이 오프로드뿐만 아니라 실생활 운전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한다. 

 

1시간 30분 정도의 교육이 끝나고 또 듀크를 따라 비포장길을 달렸다. 교육 내용을 되새기며 풀브레이킹과 슬라럼을 자유롭게 연습할 수도 있다. 다만 먼지가 많아 앞차와의 거리를 많이 두어야 한다. 먼지는 시야를 가리는 것은 물론이고 차 엔진에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에린디(Erindi) 리조트. 나미비아에서 가장 큰 게임 리조트로 오카푸카보다 7배나 크다. 여기서 말하는 ‘게임(Game)’은 각종 동물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나미비아에서는 이 ‘게임’이라는 단어를 레스토랑에서도 쓴다. 게임 스테이크는 야생동물(스프링복이나 쿠두 등)을 요리한 것인데, 적정 개체수를 유지하기 위해 사냥을 한다. 오릭스는 아주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 맛이 쇠고기 안심 스테이크와 비슷하다. 

 

방을 배정받고 짐을 푸는데 듀크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빨리 레스토랑으로 가봐. 놀랄 만한 것이 있을 거야”란다. 짐가방을 대충 던지고 레스토랑으로 달렸다(리조트가 커서 한참을 가야 한다). 입이 떡 벌어졌다. 13마리의 코끼리 가족이 물을 마시며 목욕을 하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야생 코끼리가 떼로 모여서 악어와 하마가 득시글거리는 곳에서 자유롭게 목욕을 하다니. 그리고 호수 주변에는 물을 마시러 온 초식동물을 볼 수 있고 그 뒤로는 작은 초식동물을 노리는 자칼이 있다.

 

코끼리들은 한참 동안 한가로이 목욕을 즐겼다. 악어가 코끼리를 공격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조지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악어는 코끼리를 공격하지 않아. 그랬다가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거든.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은 하마야. 성격이 포악해서 자기 영역에 들어오는 모든 동물을 무시무시한 입으로 물어뜯어 버리지.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 동물도 하마야. 그런데 하마도 코끼리는 공격하지 않아.” 

 

한참 동안 코끼리, 하마, 악어를 관찰 한 뒤 에린디 사파리 투어에 나섰다. 이번에도 개조한 디펜더다. 오카푸카와 다른 것은 가이더가 총을 소지한다는 것. 출발하기 전에 엄청나게 큰 총알 다섯 발을 장전하고 대시보드에 총을 고정한다. 그만큼 위험한 동물이 많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날 사자와 치타, 코브라, 독수리 등을 비롯해 수많은 초식동물을 봤다. 참가자 10명 모두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리고 해가 떨어지자 차에서 내려 아프리카 대초원 한가운데서 아프리카 전통술 아마룰라(Amarula)를 마셨다. 물론 그곳은 사자와 치타가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그날 밤 나를 포함한 한국 참가자 네 명은 서울에서 싸온 소주와 라면, 햇반, 깻잎 등으로 한국식 만찬을 즐겼다. 그날 있었던 재미난 이야기가 수많은 별만큼 쏟아져 나왔다. 아마 에린디 리조트에서 가장 늦게 잠든 투숙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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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났다. 전날 늦게 잠들었는데도 몸이 거뜬하다. 역시 사람은 좋은 공기를 마시고 살아야 하는가 보다.짐을 꾸려 X5에 싣고 듀크를 따랐다. 붉은 모래가 깔린 비포장길을 시속 100~160킬로미터로 달렸다. 우리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라고는 염소 떼가 길을 막았을 때와 당나귀, 말 등이 길로 나와서 느긋하게 산책을 즐길 때 뿐이었다. 서울에서는 운전이 스트레스지만 이곳에서는 운전 자체가 힐링이다. 

 

대략 250킬로미터를 달리자 듀크가 차를 세웠다. 그리고 모든 X5의 타이어 공기를 빼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오프로드를 준비하는 거다. 그를 따라 들어간 곳은 물 없는 강바닥이다. ‘강바닥을 달린다니’. 이건 정말 생각도 못 해본 경험이다. 움푹움푹 빠지는 모래가 깔린 곳으로 차의 그립력이 낮아 슬립이 많이 일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진 그립력이 큰 재미로 다가왔다. 바로 드리프트다. 뒤가 흐르기 시작하면 카운터 스티어만으로 어렵지 않게 슬라이드를 즐길 수 있다. 오프로드에서는 DSC 오프 상태로 달리기 때문에 슬립이 일어도 바퀴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 오늘을 위해서 어제 듀크가 슬라럼을 연습시킨 것이었다. 차가 미끄러진다고 해도 사고 위험은 낮다. 강폭이 넓고 차간 거리가 100미터 이상으로 떨어져있으니까. 

 

아마 한국에 있었으면 ‘병풍바위’라는 이름을 붙여서 입장료를 받았을 법한 바위산이 끝없이 펼쳐졌다. 어떤 것은 개 대가리처럼 생겼고 독수리가 날개를 펼친 모양도 있다. 또 어떤 것은 사람 같기도 하다. 그런 바위가  수도 없이 많다. 경이롭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강바닥을 달리고 달려 도착한 곳은 나미비아의 3대 와이너리 중 하나라는 크리스탈 켈러레이(Kristall Kellerei). 나미비아는 일조량이 많아 포도 당도가 높다. 그리고 이곳은 좋은 포도 수확을 위해 트랙터 등 농기구를 쓰지 않고 오직 사람 손으로만 포도를 재배한다. 그래서 생산량이 적어 나미비아와 남아공에서만 판매되고 해외로는 수출되지 않는다. 이곳에서 와인 생산 공정도 보고 직접 와인도 시식했다. ‘소맥’ 전문가 입장에서는 시큼 쌉싸래하면서 달콤한 것이 ‘꽤 괜찮은 와인이 아닐까?’라고만 짐작할 뿐이었다. 

 

와이너리를 나와서 또다시 비포장길이다. 나미비아에는 이런 길이 많다. 수많은 차가 다니면서 바닥이 다져지고 그위로 흙과 모래가 깔렸다. 제한속도는 시속 80킬로미터지만 모든 차가 시속 100킬로미터 넘게 달린다. 아무리 달려도 차를 보기 힘들고 경찰도 없다. 그저 도로로 튀어나오는 야생동물만 주의하면 된다. 

 

오늘 묵을 곳은 아이아이바(Ai aiba)의 록 페인팅 로지(Rock Painting Lodge). 엄청 큰 바위 사이에 자리한 리조트로 나미비아의 대평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오카푸카, 에린디 리조트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 이곳에서는 2000년 전 원시인들이 바위에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아름다운 일몰. 나는 이전에 나미비아의 하늘보다 아름다운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게 낮이든 밤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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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스바코프문트(Swakopmund)까지의 대장정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비포장길과 강바닥을 달리고 달렸다. 가는 중에 원주민 서식지에 들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부시맨이다. 21세기에 아직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그들은 활로 사냥을 하면서 산단다. 그런데 그들의 최대 수입원은 우리 같은 관광객에게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대가, 즉 돈이다. 그리고 관광객들에게 타조알이나 나무를 깎아 만든 공예품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한다. 그들은 손재주가 아주 좋다. 정말 정교한 제품들이 많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똑같은 물품을 그곳에서 사는 것보다 시내에서 사는 것이 몇 배 더 싸다. 자본주의는 원시부족에게도 무섭게 파고들었다. 

 

강바닥을 따라 달리다 보면 이채로운 광경도 펼쳐진다. 마치 BBC 방송에서 본 듯한 중동의 한 전쟁터 같은 곳인데, 폐광이란다. 나미비아는 다이아몬드가 유명하다. 그 외에도 금, 구리, 우라늄 등의 지하자원이 많다. 그래서 유럽국가의 난입이 잦았다. 1867년 영국이 먼저 식민지로 선포하자. 네덜란드도 해안지역을 자기 땅으로 선포했다. 그러자 독일은 원주민 족장들로부터 땅을 헐값에 사들였고 영국, 네덜란드 등과 쟁탈전이 벌어졌다. 이후 독일이 나미비아를 완전히 식민 통치하게 됐지만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남아공이 나미비아의 통치권을 갖게 됐다. 나미비아는 1990년에 완전 독립하게 됐다. 스바코프문트는 나미비아에서 채취한 각종 지하자원을 독일로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항구도시였다. 

 

야생과 대자연 속에만 있다가 신식 건물과 신호등, 학교, 주유소가 있는 시내에 들어오니 이 또한 낯설다. 태어나서 이렇게나 많은 흑인을 본 적이 없다. 그들도 동양인을 본 적이 없는지 가는 곳마다 시선이 느껴진다. 

 

5일차 저녁 만찬은 아주 특별했다. 참가자 모두 태워 이동하는데 ‘근처 레스토랑이겠거니’ 했는데 40여 분을 달린다.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 내려주는데, 그곳에 레드카펫이 깔렸다. ‘BMW 나미비아 멀티데이 투어’ 참가자만을 위한 특별한 레스토랑이 사막 한가운데 차려진 것이다. 촛불이 양옆에 기립한 레드카펫을 밟고 입장하면 웰컴 샴페인이 건네지고 테이블에는 붉은 장미와 장미보다 붉은 레드 와인, 호밀빵과 근사한 촛대가 놓여있다. 물론 천으로 바람을 막고 지붕도 없는 간이 레스토랑이지만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처럼 황송하다. 음식도 훌륭하다. 나미비아 음식은 독일식인데 독일 음식보다 훨씬 덜 짜다. 그리고 채소와 고기가 아주 신선하다. 특히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오릭스, 안티로프, 쿠두 등의 게임미트는 레드와인과 아주 훌륭하게 어울린다. 

 

벌써 5일차 밤이 지나고 있었다. 내일은 BMW와 나미비아가 무엇으로 우리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줄지 기대되면서 한편으로는 나미비아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그렇게 스바코프문트 항구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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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피스 베이(Walvis Bay)에서 보트 투어에 나섰다. BMW 멀티데이 투어 참가자들만 타는 보트다. 나미비아 해안은 세계 최대 물개 서식지다. 수십만 마리의 물개가 해안에서 던져놓은 빨래처럼 널브러져 있다. 그만큼 먹을 것이 많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녀석들이 보트까지 올라온다. 보트에 오르면 먹이를 준다는 것을 아는 똑똑한 녀석들이다. 250킬로그램이나 하는 덩치가 갑자기 올라오면 놀라 자빠지기 일쑤다. 만질 수도 있다. 매끈매끈할 줄 알았는데 털이 거칠다. 주둥이가 엄청 큰 펠리컨도 볼 수 있다. 이 녀석들도 보트를 쫓아다니면 먹이를 받아먹을 수 있다는 걸 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돌고래. 물 위로 튀어 오르고 보트 앞에서 재롱떠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쉽게도 너무 빨라서 카메라에 담는 것은 실패했다. 배에서 내리면 신선한 굴로 점심을 해결한다. 나미비아 굴은 다른 지역에 비해 3배나 빨리 자란다. 바다에 플랑크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점심식사 후에는 드디어 ‘BMW 나미비아 멀티데이 투어’의 하이라이트 나미브사막 주행이다. 나미브사막은 무려 8000만 년 전에 생성됐다. 지구 최초의 사막으로 환경 파괴 등으로 생성된 것이 아닌 자연 그대로 지구 역사의 생생한 표본이자 증거물이다. 나미브사막은 나미비아 서쪽 해안으로 길게 늘어선 형태로 면적이 남한의 1.4배에 달할 정도로 넓다. 

 

사막 주행은 현지 가이드가 꼭 필요하다. 사구(Dune)는 바람에 의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현지 지형을 잘 아는 이가 있어야 한다. 무턱대고 혼자 들어갔다가는 그냥 사막의 모래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도 나미브사막 주행 전문가의 디펜더를 따라 주행에 나섰다. 

 

해안을 따라 얼마쯤 달렸을까. TV나 인터넷으로만 보던 드넓은 사막이 눈에 들어왔다. 생애 처음 보는 사막. 지극히도 척박한, 그 무엇도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이지만 아름다웠다. 사구의 모양이 누워 있는 여인의 몸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모래가 피부색과 비슷하다. 운전대는 참가자에게 넘기고 신발과 양말을 벗고 차에서 내렸다. 부드러운 모래가 발등까지 빠진다. 뜨겁지도 않다. 지금 이곳은 겨울. 밤에는 섭씨 5도까지 떨어진다. ‘이런 곳을 달린다고?’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X5는 잘 달린다. DSC를 끄고 달리는데 사구를 내려갈 때는 액셀러레이터나 브레이크 조작을 하지 않는다. 모래가 미끄러지면서 그립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차가 그냥 미끄러져 내려간다. 주의해야 할 것은 절대 스티어링 조작을 하면 안 된다. 바퀴가 일자로 정렬된 상태에서 그대로 내려가야 한다. 혹여 차체가 옆으로 기울면 전복 상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구를 거의 다 내려가면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그립이 생기길 기다리다가 노즈가 들리는 시점에서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사구의 경사도에 따라 스로틀 조절을 잘해야 하는데, 일단 오르기 시작했으면 절대 중간에 멈추면 안 된다. 멈추는 순간 100퍼센트 빠진다. 사구를 오를 때도 바퀴는 일자로 정렬해야 한다. 사구의 모양과 경사도에 따라 중력이 달라지는 느낌이 드는데 갑자기 내려갈 때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이다. 평탄한 곳에서는 드리프트도 쉽게 만들 수 있다.  여기저기, 온로드 오프로드 많이도 다녔는데 사막 주행이 가장 짜릿했다. 그립이 살았다 죽었다 하는 오싹함과 사구를 타고 오를 때는 하늘을 향해 달리는 것 같다. 또 내려갈 때는 모래에 처박힐 것 같은 오금이 저리는 느낌도 받는다. 내리막은 최대 52도까지 내려가는데, 이때는 신기하면서 등골이 찌릿하다. 누가 52도 내리막길을 차로 달려봤겠나. 이건 사막에서밖에 할 수 없는 경험이다. 

 

사막에서 한바탕 날뛰고 나니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이곳 나미브사막은 해가 떨어지면 대서양에서 해풍이 몰아친다. 모래가 날려 눈을 뜨기 힘들 정도다. 그래도 우리는 사막에서 맞이한 지상 최고의 어드벤처를 오롯이 기억하기 위해 사구에서 참가자 모두가 점프했다. 나뒹굴더라도 어디하나 다치지 않는다. 그리고 다 같이 사구에 올라 대서양으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본다.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듯이 대자연 앞에서 숙연해진다. 8000만 년 전에 생성된 모래는 아직도 나미브사막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인간은 100년이 지나면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한낱 모래알만도 못한 존재의 가벼움. ‘우리는 왜 이렇게 악다구니하며 힘들게 사는 것일까?’ 사막은 내게 더없는 즐거움도 줬지만 덧없는 인생무상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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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깨끗이 씻는다고 씻었는데 아직도 머리와 귓속에서 모래가 나온다. 샤워를 하고 혼자 스바코프문트 관광에 나섰다. 스바코프문트는 유럽의 신식 문물을 가장 빠르게 흡수해서 지금은 각종 쇼핑몰과 대형 마트가 즐비한 나미비아 최대 휴양도시다. 스타벅스 비슷한 커피숍에서 카페라테를 테이크아웃하고 기념품 가게 여러 곳에서 이것저것 샀다. 가격은 저렴한 편이다. 나미비아에서 대학을 나온 이들 평균 월급이 20만원 안팎이라고 하니 물가가 싼 것은 당연하다. 

 

오후에는 우리가 처음 묵었던 오카푸카 목장으로 이동한다. 아스팔트만 달린다. 무전기에서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가 난립한다. 이제 이별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느꼈는지 그동안 함께했던 참가자들, 인스트럭터 듀크, 가이더 조지까지 서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한다. 

 

오카푸카 랜치에서 마지막 바비큐 파티가 펼쳐졌다. 모두 “나미비아 일정이 꿈만 같았다”고 한다. 한국 참가자들도 “돈이 절대 아깝지 않은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나도 너무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시끌벅적 왁자지껄한 밤이다. 국적과 피부색, 종교, 나이를 뛰어넘어 6개국 12명의 사람이 모두 친구가 됐다. 서로 얼싸안고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을 췄다. 그 순간도 꿈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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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계속 연락하자”는 말과 함께 오스트리아 형제가 아침 일찍 떠났다. 한국,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참가자들은 미니밴을 타고 빈트후크 관광에 나섰다. 빈부 격차가 이렇게나 심한 것이 놀랍고 안타까웠다. 신발도 없이 등교하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에르메스 매장에서 쇼핑을 하는 흑인이 있다. 대다수 학생이 선생 수가 모자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다. 반면 국제학교에는 때깔 좋은 백인들이 독일어로 수업을 받는다. 기차가 최고로 낼 수 있는 속도가 시속 40킬로미터인데, 시내에는 BMW와 벤츠가 즐비하다. 참가자 한 명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형님, 한국에서 태어난 게 정말 다행이네요.” 나도 크게 공감했다.

 

리조트로 돌아왔다.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참가자와 듀크가 떠났다. 서로 얼싸안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들이 탄 버스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버스 안에서도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한국 참가자들은 비행 스케줄 때문에 하루 더 묵었다. 그날 밤 한국 참가자들끼리 맥주를 기울이며 꿈만 같았던 ‘BMW 나미비아 멀티데이 투어’를 마무리했다. 모두 고마웠다. <모터 트렌드>가 기획한 프로그램에 지원한 것도 고맙고 아무 사고 없이 프로그램을 마무리해준 것도 고마웠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우리 네 명의 남자들은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한때를 보낸 동지이자 추억을 함께한 친구였다. 그리고 서로가 있어서 더욱 즐거웠고 행복했다. 그렇게 나미비아에서의 마지막 밤이 깊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