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TON MARTIN RAPIDE
애스턴마틴은 영국 신사다운 품위를 지키며 화끈한 성깔을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취향 역시 굉장히 까다롭다. 가죽의 질감과 가공 패턴, 심지어 바느질 모양까지 깐깐하게 따진다. 라피드의 계기반에도 그들의 이런 성향이 잘 묻어 있다. 절단면의 결을 고스란히 드러낸 알루미늄 링과 정교하게 다듬은 크리스털 조각은 이 차에 투입된 소재들의 수준을 암시한다. 크리스털을 씌운 센터페시아 버튼들과도(예전에는 리모트키에도 씌웠었다) 조화를 이룬다. 레이아웃은 완벽한 좌우대칭이다. 속도계는 시계 방향으로, 엔진 회전계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두 바늘마저 좌우대칭일 경우는 엔진을 껐을 때나 시속 180킬로미터쯤(자동변속 모드일 경우)으로 달릴 때밖에 없을 거 같다. 사실 DB 11을 비롯한 몇몇 차세대 애스턴마틴은 이미 화려한 디지털 계기반으로 넘어갔다. 그럼에도 이 계기반을 고른 건, 더 이상 이렇게 고급스러운 아날로그 계기반을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LAMBORGHINI HURACAN
디지털 계기반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하지만 반응이 빠르고 오차가 없으며 원하는 정보를 골라 띄울 수 있는 계기반이 등장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갑자기 웬 디지털 계기반 족보 이야기냐고? 첨단 계기반 시대의 막을 연 주인공이 바로 우라칸이기 때문이다. 우라칸의 계기반은 아우디 버추얼 콕핏 등 폭스바겐 그룹이 여러 브랜드에 사용하는 디지털 계기반의 토대가 됐다. 우라칸의 계기반이 첨단 계기반의 시대를 열었다고 유난을 떤 건, 고회전 V10 엔진의 움직임을 오차 없이 전달하기 때문이다(물론 내비게이션도 띄울 수 있다). 우라칸과 같은 슈퍼 스포츠카에서는 정보의 속도와 정확성이 생명이다. 람보르기니는 이를 위해 계기반에 엔비디아 테그라 3(구동 프로세서)를 넣었다. 디스플레이 크기는 12.3인치이며 초당 프레임은 60이다. 아직 국내에선 볼 수 없지만 우라칸 퍼포만테나 우루스에는 새 레이아웃이 적용된 신형 계기반이 들어간다. 

 

 

PORSCHE 911
포르쉐는 참 독특한 브랜드다. 혁신에 목숨을 걸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별로 없다. 911이 좋은 예다. 지난 55년간 차체 실루엣이 거의 그대로다. 그들이 이런 성향을 갖게 된 건, 스스로 전통을 소중하게 생각해서이기도 하지만 극성팬들의 취향 때문이기도 하다. 팬들의 질타로 시작해 포르쉐의 수긍으로 귀결된 코드네임 996의 헤드램프 사건은 유명하다. 그런데 그들이 차체 형상(그리고 RR 구조와 복서 엔진)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또 있다. 5개의 원으로 구성한 계기반이다. 1963년 데뷔 때부터 이 디자인을 유지해왔다. 과거에는 원 하나당 하나의 미터를 담았지만 지금은 온도, 압력, 연료량 등 확인 빈도가 낮은 미터들을 묶어서 넣은 뒤, 원 하나를 비워 디지털화했다. 그런데 다음 세대 911에선 더 큰 변화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신형 파나메라의 계기반이 결정적인 단서다. 페라리처럼 큰 엔진 회전계를 단 후 양쪽에 스크린을 붙였다. 

 

 

MCLAREN 720S
720S는 650S의 후속 모델이다. 650S가 그랬듯, 앞으로 공개될 맥라렌들의 토대가 될 예정이다. 당연히 섀시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이 새로 설계됐다. 계기반 역시 마찬가지다. 720S의 계기반은 100퍼센트 디지털이다. 이전에도 같은 방식이었지만 그래픽 처리 속도와 해상도가 개선됐다. 이제 잔상 따윈 찾아볼 수 없다. 레이아웃도 한결 깔끔하다. 물론 720S 계기반의 가장 큰 특징은 폴딩 기능이다. 앞으로 쓰러진 후 안으로 들어가 시선 분산을 막는다. 주행에 필요한 정보는 계기반 윗면의 추가 디스플레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엔진 회전수, 변속기, 속도 등 중요한 정보만 골라서 띄운다. 시인성도 뛰어나다. 맥라렌은 이를 ‘슬림 디스플레이’라고 부른다. 드라이브 모드를 트랙으로 바꾸면 저절로 설정된다(버튼을 눌러서 넣을 수도 있다). 맥라렌은 레이스에서 성장한 브랜드. 트랙에서 운전자에게 방해가 될 만한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는 게 역시 맥라렌답다.

 

 

MERCEDES-BENZ E-CLASS
희귀한 차의 멋진 계기반. 사실 이 기획의 의도는 이거였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E 클래스의 계기반은 탈락이다. 흔해도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E 클래스의 계기반을 제외할 순 없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근 성장을 주도하는 핵심 요소인 데다, 완성도도 굉장히 뛰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이 계기반은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을 함께 봤을 때 더 빛을 발한다. 두 개의 12.3인치 스크린이 내는 분위기가 아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이를 ‘와이드 스크린 콕핏’이라고 부른다. 현행 S 클래스를 통해 공개된 구성이지만 사실 이는 이전 세대 S 클래스와 CL 클래스에서 진화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스크린의 품질(해상도)을 높이고 가운데 파티션을 제거했을 뿐이다. 참고로 이 구성은 이제 A 클래스까지 확장됐다. 이제 송풍구를 위쪽으로 옮기고 센터페시아에 세로 배치 대형 스크린을 달 가능성이 크다. 스크린이 운전자를 ‘ㄱ’자로 감싸는 설계는 내년쯤 공개될 차세대 S 클래스에 가장 먼저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FERRARI 812 SUPERFAST
페라리 인테리어의 변화 주기가 빨라졌다. 특히 고급화와 편의성 개선이 인상적이다. 이젠 첨단 장비 투입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거듭되는 개혁 속에서도 변치 않는 게 있다. 바로 거대한 엔진 회전계다. 사실 이 엔진 회전계는 일종의 자부심 표현이나 다름없다. 페라리는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엔진을 만드는 브랜드가 아닌가. 속도와 같은 정보는 양옆의 디지털 스크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좌측은 주행과 관련된 정보를 띄우는 인포 스크린이며 우측은 내비게이션, 블루투스 연결, 음악 재생 등을 책임지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다(당연히 영상 재생은 지원하지 않는다). 참고로 812 슈퍼패스트의 레드존은 8800rpm부터 시작하며 바늘은 정확히 8900rpm을 찍고 떨어진다. 거대한 엔진 회전계는 빠른 회전 상승과 섬세한 반응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끝을 모르고 치솟는 바늘과 황홀한 엔진 사운드를 듣고 있으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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