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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로 축조한 세계

또 다른 시도다.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온 뮤지션, 리처드 용재 오닐의 행보에 진부함이란 없다. 비올라 한 대만으로 무결한 음악을 완성한 앨범 <솔로SOLO>에 이어, 이번엔 오로지 현악기 2중주곡만 담은 <듀오DUO> 앨범을 공개했다. 긴장감 넘치는 현과 현의 경합, 그리고 새 악기에 대한 이야기.

2018.05.11

니트 짜임의 재킷과 울 소재 풀오버 니트, 브라운색 조거 팬츠 모두 에르메네질도 제냐. 브라운색 로퍼는 S.T. 듀퐁. 

 

리처드 용재 오닐의 얼굴엔 옅게 피곤이 서려 있었다. 하루 두세 차례의 인터뷰와 촬영, 방송 녹화 등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며 한창 활동 재개를 알리는 와중이었다. 아홉 번째 정규 스튜디오 앨범인 <듀오DUO> 발매를 기점으로 하루 겨우 서너 시간씩 자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도 오늘은 이 인터뷰 스케줄뿐이라 가뿐해요.” <2018 디토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앙상블 디토의 리사이틀과 임동혁과의 듀오 공연, 그리고 로스앤젤레스 브로드 스테이지 상주음악가 활동까지. 당장 떠오르는 예정 활동만 읊어도 이렇게 숨이 가쁜데, 정작 당사자는 남 일처럼 여유를 부리며 웃는다. “전에 없는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지만 마음은 즐거워요. 또 어떤 멋진 사람들과 함께하게 될지, 어떤 음악을 나누게 될지 기대되니까요.”

 

 

현과 현의 교감
리처드 용재 오닐이 지난 3월 발표한 신작 <듀오DUO>는 그의 도전 정신을 확인시켜주는 앨범이다. 비올라 한 대로 반주가 배제된 연주를 통해 깊이와 테크닉, 그리고 폭넓은 감성을 표출한 2012년 <솔로SOLO> 음반도 적잖이 대담했는데, 이번에는 현악기 2중주 곡만으로 트랙 리스트를 채웠다. 비올라와 바이올린, 비올라와 첼로, 그리고 비올라와 비올라가 함께한 현악기 듀오 레퍼토리. 통상 피아노와 함께하는 비올라 듀오에 익숙한 클래식 팬들에게는 다소 낯설고 어려운 현과 현의 만남이다. 할보르센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2중주, 프랭크 브리지의 두 대의 비올라를 위한 ‘애가’ 등. 앨범 속 현과 현은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경합을 벌이고, 대화를 나눈다. 
<듀오>는 사실 리처드 용재 오닐이 추구하는 가치를 한껏 반영해 더욱 각별한 앨범이기도 하다. 바로 ‘교감’의 가치다. 음악가의 큰 즐거움 중 하나가 교감이라고 믿는 그에게 이번 앨범을 준비하는 전 과정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먼저 연주자들과 교감했어요.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와 첼리스트 문태국, 비올리스트 이수민이 참여했죠. 모두 한국의 젊고 재능 있는 연주자들이에요.” 용재 오닐은 앨범에 참여한 아티스트를 하나하나 정중하게 언급하며 ‘훌륭하다’, ‘뛰어나다’, ‘눈부시다’ 같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현과 현의 대화를 통해 현악기만의 매력을 알리고 싶었어요. 현악기의 각기 다른 음역대로 화음을 만들거나 다양한 활의 테크닉을 믹스하는 등 다채롭고 이색적인 음악을 만드는 것은 제게 도전인 동시에 즐거운 경험이었죠. 특히 이수민 비올리스트와 함께한 ‘비올라, 비올라’는 큰 도전이었어요.” 조지 벤저민의 비올라 2중주 곡은 관객은 물론 연주자에게도 어려운 곡으로 정평이 나 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조지 벤저민을 무척 존경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조지 벤저민 열혈 팬인 이수민 비올리스트는 작업 내내 그에 관한 방대하고 재미있는 후일담을 들려줘 곡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참, 이수민 비올리스트는 무척 직설적인 사람이에요. 독일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이잖아요(웃음). 저는 그녀의 직설적이고 정확한 표현이 좋았어요. 그 에너지에 대단히 영감 받았고요.” 
재미있는 점은 그의 교감이 비단 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0년부터 그와 함께해온 비올라, ‘고릴라(악기를 만든 베네치아 장인 마테오 고프릴러의 이름에서 따왔다)’를 살아 있는 친구처럼 대해온 그가 이번 앨범에서는 새로운 비올라 친구와 호흡을 맞췄다. “1600년대에 만들어진 오래된, 저의 새 악기예요. 아직 이름은 없어요. 이번 작업은 이 비올라로 녹음한 첫 앨범이에요.” 다시 말해 새 친구와의 첫 기록인 셈이다. “이번 앨범의 가장 큰 의미랄까, 성과는 이 악기와의 교감이에요. 제가 이 악기로 연주하자, 악기는 곡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것처럼 매끄럽고 능숙하게 연주를 이어갔어요. 마치 마법 같았죠.” 악기가 사람처럼 음악을 기억하고 회상한다고 믿는 그는 새로 사귄 친구를 대하듯 정감 어린 손길로 악기를 매만졌다. 악기를 쓰다듬는 그의 얼굴에 조금 전 본 피곤한 기색이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롤칼라 블레이저와 셔츠 모두 조르지오 아르마니. 

 

음악이 만들어내는 선순환 
“사실 최근 부상을 당한 적이 있어요. 일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였어요.” 지리산 종주 때 다친 다리 이야기인 듯했다. 그는 지난해 5월, 38시간 동안 구례군과 지리산 둘레길 100km를 걷는 ‘옥스팜 트레일워커’에 참여했다.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동아프리카 식량 위기 지역을 포함한 전 세계 긴급구호 현장을 돕기 위한 도전형 기부 챌린지다. 그는 당시 당한 인대 부상으로 한동안 불편한 다리를 절며 무대를 오르내렸다. “몸 관리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음가짐에는 한계가 없지만 신체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값진 레슨을 받았다고 여기려고요.” 용재 오닐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소통과 공유를 통해 책임을 실천하는 것은 그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천재 아티스트’라는 그의 타이틀에는 일말의 연출이나 과장이 가미되지 않았다는 것도. 차별을 당하는 스물네 명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프로젝트 <안녕?! 오케스트라>와 재해민에게 기부를 유도하는 프로그램 <Love 챌린지> 등에서 비친 그의 모습에는 꾸밈이 없었다. 세상만사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다수의 방송 및 언론 관계자들도 그에게서만큼은 진정성을 느꼈다고 소회할 정도다. 하지만 음악과 병행해 이같이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저의 행동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생각하는 순간이 많아졌어요.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 좋은 연주자뿐만 아니라 좋은 시민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아요. 나이가 들수록 제 삶이 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거죠. 그리고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에요(웃음). 하지만 무엇이든 지금 마음먹은 것을 당장 해야만 해요. 제가 가진 제한적인 에너지를 음악과 그 외 활동에 잘 안배하고 있어요.”
그는 작년 9월부터 시작한 <안녕?! 오케스트라>의 후속편, <엄마를 위한 노래>의 촬영을 마쳤다. 6년 전 용재 오닐과 함께 오케스트라를 꾸린 아이들 중 몇몇이 다시 그와 함께 그들의 엄마가 자란 나라를 찾았다. <안녕?! 오케스트라>를 시작할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은 지금 어엿한 고등학생이 됐다. 엄마가 자라온 환경을 접하고 그 나라의 노래를 배우며 아이들은 엄마와 엄마의 나라를 한층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을 터다. “세상에는 수많은 불공정과 차별이 존재하죠. 혹자는 인종 차별이 사라졌다고 말하는데, 아니요. 인종 차별을 비롯한 여러 차별은 여전히 존재해요. 저는 우리가 가진 긍정적인 에너지를 피력하고 이를 나누며 균형을 맞추려는 움직임으로 차별에 대항할 수 있다고 믿어요. 음악의 순기능은 사회를 하나로 묶는 것이잖아요. 그렇기에 사회에 환원하는 활동 역시 음악과 같은 성격의 행위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음악을 통해 배운 세상의 사랑을 따스한 선율로 되돌려주는 리처드 용재 오닐. 그가 선율로 축조한 세상에는 온정의 선순환이 끝없이 ‘도돌이’ 치고 있다.  

 

 

 

니트 소재의 칼라 셔츠는 오디너리 피플.  체크 팬츠는 맨 온더 분. 슈즈는 닥터마틴. 

 

 

 

 

 

더네이버, 인터뷰, 리처드 용재 오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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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인터뷰,뮤지션,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라,<듀오 DUO>

CREDIT Editor 박수현 Photo 김도원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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