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현대·기아차의 내수 시장 점유율이 80퍼센트를 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한국지엠, 쌍용, 르노삼성 등 나머지 국내 완성차 브랜드의 판매대수가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의 판매대수와 막상막하였다는 소식이 뒤를 따랐다. 두 소식에서 ‘팩트(fact)’는 무엇일까? 사실 팩트는 하나밖에 없다.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이 늘고 다른 브랜드들 점유율이 줄었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가 잘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여기에선 확인할 수 없다. 다른 브랜드들이 너무 못해서 상대적으로 점유율이 늘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팩트, 즉 사실의 확인과 관련된 단계다. 한 단계 더 나아간 팩트는 현대·기아차가 그랜저와 소형 SUV 등으로 하락세를 벗어나고 있고 다른 브랜드들은 신차 부재 등의 이유로 부진했다는 것까지다. 

하지만 메르세데스 벤츠의 1월 국내 판매량과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국내 3개 브랜드의 판매량을 비교한 것은 팩트조차도 아니다. 벤츠 코리아 판매가 급증했고 국내 3개 브랜드 판매량이 하락했다는 사실이 옳다고 하더라도 이 비교는 팩트조차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는 한국지엠, 르노삼성, 쌍용과 경쟁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비교는 국내 3개 브랜드의 저조한 실적과 메르세데스 벤츠의 강세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선정적인 비교에 불과하다. 현대·기아차의 강세에 휘청거리는 국내 군소 브랜드들이 이제 수입 브랜드들에게도 당하고 있다는 상실감을 자극하는 감정적인 이야기라는 거다.

이렇듯 무엇이 팩트인지 확인하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정보 자체는 사실이라고 해도 이것들을 사용한 분석이 잘못됐거나 정보의 가공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팩트라고 할 수 없다. 팩트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그것들이 갖는 의미를 확인하는 것까지라고 할 것이다. 그다음 단계는 확인한 팩트 가운데에서 당면한 문제점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즉 ‘팩터(factor)’를 확인하는 일이다. 아무리 정보를 잘 분석해서 팩트를 확인했다고 해도 ‘그것이 내게 무슨 의미인가’를 알지 못한다면 그것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는 죽은 정보에 불과하다. 그리고 팩터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당연히 올바른 대책도 수립할 수 없다.

문제의 원인과 요소를 파악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신조차 평가의 대상으로 객관화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정이며, 스스로를 비판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하고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요즘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자신의 과오를 드러낸다는 것은 어쩌면 자살행위일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 주변은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기보다는 누구 잘못인가를 지목하기에 열심이다. 그러면서도 개인인 내가 개인인 상대방을 지적하는 부담은 지기 싫어한다. 그래서 집단 대 집단의 대결 구도를 만든다. 즉 내가 속한 ‘선한’ 집단이 ‘악한’ 상대 집단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는 구도를 조장하는 것이다. 즉 팩트가 팩터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팩션(faction)’, 즉 편가르기로 변질되는 것이다. 

원고를 마무리하기 직전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한국지엠이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그 핵심에는 군산공장의 폐쇄가 포함돼 있다. 정부와 지엠 본사가 정상화 대책을 논의 중이라는 뉴스가 나온 것이 불과 며칠 전이어서 다소 빠른 대책 발표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는 사실 예견됐던 결과다. 큰 마음 먹고 내놓은 크루즈가 실패하면서 공장 가동률이 20퍼센트 이하로 떨어졌는데 올란도까지 단종하게 되면 공장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며칠간 한국지엠과 관련된 뉴스를 보면서 실망을 넘어 당혹감을 느낀다. 많은 뉴스들이 매우 선정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지엠이 ‘일자리에 목을 매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인질 작전을 하고 있다’, 심지어 ‘지원해주지 않으면 철수한다’ 같은 자극적인 표현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라디오에 출연한 전문가가 ‘한국지엠은 좀비 기업’이라고 말하고, 지엠을 ‘글로벌 깡패’라고 부르는 기사까지 등장했다. 여지없는 팩션의 등장인 것이다.
감정적 반응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쌓인 화를 해소했다면 다음 단계는 냉정함을 되찾고 대책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대책은 최선부터 최악까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최선에 가깝도록 가능성을 높여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다. 냉정하자. 흥분하면 진다. 

모터트렌드, 자동차, 자동차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