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 데이비슨 팻보이 S
오랜만에 모터사이클을 시승하게 됐다. 가슴이 설레야 할텐데 솔직히 이번 시승은 별로 내키지 않았다.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할리 데이비슨이었기 때문이다. 꺼질 듯 말 듯 헐떡이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할리의 엔진 회전 감각이 내게는 말 못하는 엔진을 고문하는 괴팍한 취미처럼 느껴진다.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인 데다 도시를 생활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실정과 크루저라는 장르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잘 돌지 않고, 잘 멈추지 않는다는 할리 데이비슨의 크루저다운 특징(?)은 기본기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내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성격이다. 탈것이 잘 돌고 잘 멈추지 않으면 어떻게 목숨을 맡기고 즐길 수 있겠나?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할리 데이비슨 전시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내가 알던 할리 데이비슨과는 사뭇 다르다. 이전에는 아웃사이더가 연상되는 일탈의 이미지가 강했다면 이제는 럭셔리 코드와 라이프스타일 이미지가 강하다. 라이딩 기어가 아닌 일반 패션 어패럴 라인업이 전시장 한쪽에 있을 정도다. 새로운 고객이 할리 데이비슨에 접근하기 좋아졌다는 뜻이겠지만 할리 마니아들에게는 옅어진 개성이 아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할리 마니아가 아니니 일반 라이더의 입장에서 접근해보기로 했다. 이게 할리 데이비슨이 원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우선 내가 탈 녀석, 팻보이 S의 외모를 살폈다. 총알이 관통한 것 같은 둥근 구멍을 촘촘히 낸 휠은 일반 소프테일 모델과 같지만 팻보이는 속이 꽉 찬 디스크 휠과 두툼한 타이어를 신었다. 팻보이에는 그냥 팻보이와 스페셜, S 모델이 있는데 팻보이 S는 궁극의 튜닝 버전이다. 가장 미국적이면서 확실하게 성능을 높이는 방법으로 튜닝했기 때문이다. 그 방법이 바로 엔진 스와프, 그러니까 엔진을 통째로 바꿔버린거다. 팻보이 S에 얹힌 엔진은 거대한 투어러 계열에서 사용하던 1.8리터급 빅 트윈 엔진이다. 참고로 일반 팻보이에 얹히는 엔진은 1.69리터다. 팻보이 S는 여기에 차체 전체를 검은색으로 휘감아 크롬으로 번쩍 번쩍 빛나는 팻보이와는 완전히 다른 심각한 분위기를 띤다.

 

실루엣이 예술이다 팻보이 S는 옆에서 보는 실루엣이 예술이다. 볼륨 넘치는 라인이 누구라도 ‘쓱’ 쓰다듬고 싶게 만든다.

 

 

음, 그런데 시승차에 시동이 걸려 있다. 엥? 이게 시동이 걸린 거라고? 원래 소프테일 계열은 엔진을 차체에 직접 매다는 리지드 마운트 방식을 쓴다. 거대한 트윈 엔진이 할리 특유의 리듬으로 춤출 때 차체 전체는 물론 그 위에 앉은 라이더도 춤추게 된다. 고무 마운트를 사용해 프레임 안에서 엔진만 춤추는 다이나(Dyna)나 투어러 계열과는다르다. 그런데 팻보이 S는 의외로 진동, 아니 차체의 요동이 적다. 시트에 앉아 스로틀을 돌려봐도 몸을 뒤흔드는 감각이 덜하다. 사운드 역시 거슬리지 않는 기분 좋은 수준이다. 얌전하고 조용해진 할리가 난 참 좋지만 마니아들은 좀 서운해할 것 같다.

 

시트에 앉아 자세를 점검했다. 핸들 바는 할리 기준으로는 낮지만 넓지는 않은 공격적인 포지션이다. 발판의 위치는 앞으로 완전히 다리를 뻗어야 하는 초퍼 스타일과 잔뜩 굽히는 일반 모터사이클의 중간 쯤이라 위화감이 크지 않다. 브레이크와 클러치 레버는 이전보다 가볍지만 업계 표준에 비하면 여전히 무겁다. 두툼한 레버 덕(?)에 전반적으로 차체를 움직이는 느낌이 묵직하다. 330킬로그램이 넘지만 무게중심이 낮아 일으키는 건 생각보다 쉽다.

 

기어를 넣고 출발했다. 기어가 들어갈 때 ‘철컹’ 하고 들리는 묵직한 금속음은 첨단보다는 전통의 감각이다. 스로틀을 돌리며 클러치를 붙이다 깜짝 놀랐다. 엔진이 이렇게 활기차다니! 풍부한 저속 토크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엔진 회전수를 올려가는 과정이 이렇게 상쾌할 수 없다. 팻보이 S의 110B 엔진은 투어러의 110B 엔진과 다른 것이다. 할리 데이비슨의 팩토리 튜너인 스크리밍 이글이 튜닝한 엔진이다. 에어필터 위에 스크리밍 이글의 로고가 붙은 건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이 엔진은 3000r pm에서 최대토크가 나오는 103B 엔진이나 3200rpm에서 최대토크가 나오는 투어러의 110B 엔진보다 훨씬 높은 4000rpm에서 최대토크가 나온다. 고회전을 좋아하는 엔진이라는 뜻이다.

 

머플러 길게 두르고 팻보이는 두 개의 머플러를 뒤쪽까지 길게 빼 멋을 냈다. 스크리밍 이글이 튜닝한 110B 엔진을 얹었는데, 이를 자랑하기 위해 에어필터에 스크리밍 이글 로고를 박았다.

 

 

코너를 도는 느낌은 가볍지 않다. 다른 브랜드의 바이크처럼 라이더의 가벼운 체중 이동으로는 반응이 오는 듯하다가 멈춘다. 하지만 0.1톤에 달하는 내 체중(북미 라이더 규격에 꼭 맞는!)을 지그시 시트 안쪽에 실어주면 의외로 매끈하게 코너링을 해내는 모습에 다시 놀란다. 안쪽에서 핸들바를 앞으로 밀어 균형을 잃게 만든 다음 코너를 공략하는 카운터 스티어나 널찍한 발판을 누르는 것도 코너를 미끈하게 빠져나가는 데 효과적이지만 팻보이 S는 지긋하게 체중을 실어줄 때 보여주는 진득하면서 매끈한 모습이 매력적이다. 신선한 충격이다.

 

 

 

물론 아쉬운 게 없진 않다. 코너링을 본격적으로 즐기려고 하면 여지없이 발판이 노면을 긁는다. 사실 팻보이 S는 일반 팻보이가 아니라 팻보이 로(Fat Boy Lo)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지상고가 낮고 그만큼 좌우 기울기의 한계도 낮다. 선회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다는게 아쉬울 따름이다. 게다가 발판의 위치 탓에 노면 충격을 어쩔 수 없이 허리가 모두 흡수하는데, 겉에서 보기에 뒤 서스펜션이 없는 것처럼 생겼기 때문에 뒤쪽의 충격 흡수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노면이 좋지 않은 곳이나 과속방지턱이 많은 곳에서는 쉽게 피로해진다. 앞바퀴 브레이크 성능 역시 한참 부족하다. 아무리 뒷바퀴 제동력에 많이 의존하는 크루저라고 해도 팻보이 S처럼 달리고 싶어 하는 모델이라면 브레이크도 당연히 좋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팻보이 S는 내가 갖고 있던 할리 데이비슨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매끈한 엔진 회전 감각과 흔들림 없는 선회 안정성이 ‘할리는 느린 아저씨 차’라는 선입견을 날려버렸다. 팻보이 S를 타고 나니 트윈 디스크 브레이크와 제대로 작동하는 트윈 쇼크 업소버가 달린 다이나 로라이더 S에도 눈이 간다. 아, 그러면 고무 마운트 때문에 엔진이 고동치는 게 덜 느껴질 텐데 어쩌지? 이런저런 할리 모델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할리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가?’
글_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

 

 

 

슈퍼바이크라 불러주오 디테일이 강한 엑스디아벨 S는 크루저의 탈을 쓴 슈퍼바이크다. 악을 쓰며 돌아가는 엔진 소리가 달리기를 부추긴다.

 

 

두카티 엑스디아벨 S
두카티 디아벨의 성격은 아리송하다. 누군가는 크루저라고 했는데 여기에 마냥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 없었다. 반면 엑스디아벨은 미국스타일의 크루저라는 걸 분명히 한다. 신차 발표회도 미국에서 열었다. 엑스디아벨은 디아벨과 같은 듯 전혀 다른 차다. 엑스디아벨의 ‘X’는 크루저 본래의 저속 주행 쾌감에 화려한 이탤리언 스타일, 그리고 고성능이라는 두카티의 성격을 합한 크로스오버라는 의미다. 섹시한 두카티는 늘 나의 관심을 끌었다. 두카티 중에서도 디아벨과 엑스디아벨의 카리스마는 어느 바이크보다 강하다. 내 눈에 엑스디아벨은 양산되는 모터사이클 중에서 가장 멋진 차 중 하나다. 그동안 타던 할리를 바꾸고 싶던 터라 엑스디아벨을 향한 관심도 컸다. 그러니까 이번 시승은 그동안 궁금했던 바이크를 체험하는 사심 가득한 시승이다.

 

바이크의 디자인은 참 오묘하다. 작은 플라스틱 조각 하나를 붙이고 떼는 데 따라 분위기와 느낌이 달라진다. 그 느낌을 간단하게 설명하긴 어렵다. 그저 느낌으로 주고받아야 한다. 성능도 뛰어나지만 디자인에서 앞서가는 두카티는 디테일이 강하고, 근사한 바이크를 만들었다. 엑스디아벨은 아메리칸 크루저의 이탈리아식 해석이다. 연료탱크의 부드러운 곡선은 시트로 이어지고, 다시 뒤로 솟구친 짧은 시트 아래 너비가 240밀리미터나 되는 두터운 타이어가 달렸다. 큼직한 타이어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심플하게 넘실대는 곡선에 나도 모르게 침이 고인다. 명색이 크루저인데 가방 따위를 달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자동차 타이어 아닌가요? 엑스디아벨 S는 뒷바퀴에 240/45ZR17 사이즈의 큼직한 피렐리 타이어를 신었다. 디아벨과 달리 체인이 아닌, 벨트를 돌려 바퀴에 힘을 전한다.

 

 

시승차인 엑스디아벨 S는 기본형과 조금 달라서 엔진 커버와 시트의 옵션 등이 화려하다. 기본형 값에 500만원을 더 내야 하지만 대부분의 고객은 S 모델을 고를 것 같다. 훨씬 고급스럽고 근사하니까. 두카티의 상징인 스틸 튜브 프레임과 엔진은 하나의 덩어리가 돼 스트레스를 받아낸다. 두 개의 머플러는 옆으로 빼내어 박력을 실었다. 싱글암으로 지지되는 뒷바퀴는 S 모델 전용 단조 휠을 달았다. 휠베이스가 1615밀리미터에 달하는 차체는 건조 무게가 220킬로그램에 불과하다.

 

모터사이클은 차마다 앉는 자세가 달라진다. 아메리칸 크루저를 표방하는 엑스디아벨은 포워드 스텝을 달았다. 앞으로 뻗는 다리가 익숙하지 않아 자세가 어정쩡하다. 이런 자세라면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는 핸들바가 편할지도 모르겠다. 엑스디아벨은 핸들바와 시트, 스텝을 조절해 60가지의 운전 자세를 만들 수 있는데, 시승을 위해 빌린 것이기에 그냥 타기로 했다. 시트 높이는 755밀리미터로 충분히 낮아 타고 내리기가 수월하다.

 

 

 

L-트윈이라는 두카티 테스타스트레타 1262cc 156마력 엔진은 수랭식에 듀얼 스파크를 달았다. 1198cc인 디아벨 엔진의 배기량을 키우고 가변밸브 타이밍 시스템 DVT를 얹어 크루저용으로 디튠한 것이다. 이 엔진은 멀티스트라다에도 얹혔다. DVT는 흡기밸브와 배기밸브의 여닫는 시간을 독립적으로 변화시켜 고회전에서는 최고출력을 얻고, 저회전 영역에서는 최대토크를 얻는다. 하나의 엔진에서 두 가지 장점을 뽑아낼 수 있다. 저속에서 토크가 중요한 크루저의 성격에 잘맞는 엔진이다. 고속에서는 1만rpm까지 치솟아 고출력을 내뿜는다.

 

엑스디아벨은 디아벨과 달리 체인이 아닌, 벨트를 돌려 바퀴에 힘을 전한다. 크루저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보쉬 ABS에 연결된 브렘보 브레이크는 경주용 바이크 같은 성능을 낸다. 주행모드는 스포트, 투어링, 어번 등으로 나뉘어 모드마다 최고출력과 트랙션 컨트롤, ABS시스템이 달라진다. 스포트와 투어링에서는 156마력, 어번 모드에서는 100마력을 내도록 세팅됐다. 먼저 새 차에 적응하기 위해 어번 모드에 두고 달렸다. 시내를 달리는 동안엔 1, 2단만으로 충분했다. 회전수가 부드럽게 치솟고, 회전대역이 넓어서 조절이 쉬웠다. 양철 판이 파르르 떨리는 것 같은 엔진 소리는 회전수가 증가함에 따라 박진감을 불러온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차체는 다루기도 쉽다.

 

점차 속도를 더해가자 엔진이 괴성을 지른다. 그 소리가 좋아 일부러 기어 단수를 낮추고 고회전으로 몰아갔다. 악을 쓰는 차에서 두카티 본래의 흥분이 살아난다. 무슨 크루저가 고성능 바이크 같다. 함께 시승한 팻보이 S는 출력이 80마력 정도일 것이다(할리는 출력을 공개하지 않는다). 엑스디아벨은 팻보이 S보다 100킬로그램 남짓 가볍지만 출력은 두 배에 달한다. 가볍고 경쾌한 엑스디아벨에 올라 마구 쏘아대며 달리니 온몸이 짜릿짜릿하다. 신호등이 바뀌자 스포츠 모드에 두고 핸들을 당겼다. 엑스디아벨이 화살처럼 쏜살같이 뛰쳐나간다. 디아벨의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시간이 2.6초라고 하니 엑스디아벨은 아마 3초쯤 될 거다. 엑스디아벨은 슈퍼바이크처럼 달리는데 나의 포워드 스텝 자세는 너무도 엉성해서 속도를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할리를 좋아한 이유는 둥둥거리는 엔진의 고동치는 맛 때문이다. 몸을 흔들어대는 떨림이 무척 좋았다. 통쾌하지만 적당한 파워가 한편으로는 안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할리의 오래된 디자인이 자꾸 두카티를 넘보게 한다. 엑스디아벨은 크루저 모양을 한 슈퍼바이크다. 뛰쳐나가는 기세가 할리와 차원을 달리한다. 악을 쓰며 달리는 엔진 소리는 크루저에서 기대하지 못한 것이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성능은 상상을 넘어선다. 엑스디아벨을 제대로 즐기려면 내맘을 추스르고 차를 달래야 한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바이크를 바꿀 마음이 더 커졌냐고? 음, 느긋한 크루저를 타던 나에겐 슈퍼스포츠를 탈 마음의 준비가 먼저 필요할 듯하다.
글_박규철(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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