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2~23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서울 스마트 모빌리티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미래 대중교통의 디자인 방향을 고민하기 위해 서울시가 마련한 이 컨퍼런스에 시로 나카무라 닛산 디자인 총괄 수석 부사장이 초대됐다. ‘미래 자동차 변화와 디자인 트렌드’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기 위해서다. 오랜만에 서울을 찾은 나카무라 부사장을 <모터 트렌드>가 만났다. 그리고 그가 그리는 미래 닛산의 모습과 새로운 닛산의 디자인에 대해 물었다.

 

 

 

새로운 무라노는 V 모양의 프런트 그릴로 구성된 V 모션이 강조됐다. 시로 나카무라 닛산 디자인 부사장은 앞으로 닛산 모델의 V 모션을 더욱 강조할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 스마트 모빌리티 국제 컨퍼런스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오늘 컨퍼런스를 주도한 리처드 정은 YFAI 글로벌 디자인 부사장이자 나의 오랜 친구인데 이런 행사가 있으니 와주겠냐고 부탁해 흔쾌히 수락했다. 미래의 교통수단과 더불어 닛산이 그리는 미래 자동차의 모습을 이야기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리처드 정이 까마득한 후배이긴 하지만 같은 학교를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패서디나 아트센터 디자인 대학이다. 그곳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했다.

 

프레젠테이션 잘 봤다. 특히 자율주행차인 IDS 콘셉트가 인상적이었다. 구글은 스티어링휠이 없는 자율주행차를 실험하고 있는데 IDS 콘셉트에는 ‘수동 운전 모드’가 있는 게 맘에 들었다. 닛산의 자율주행차는 운전하는 즐거움을 남겨둘 것이라고 이해해도 되나? 
IDS 콘셉트는 수동 운전 모드를 선택하면 스티어링휠이 나타나고, 자율주행 모드를 선택하면 스티어링휠이 사라진다. 운전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차는 기본적으로 운전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춰야 한다. 스티어링휠이 없는 차는 닛산이 그리는 미래 자동차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면 닛산의 자율주행차에서 스티어링휠이 없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물론이다!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신형 무라노와 알티마의 얼굴이 좀 더 강렬해졌다. 지금의 이 얼굴이 앞으로 닛산의 디자인을 이끌 새로운 얼굴인가?
그렇다. V 모양을 이루는 V 모션 그릴이 닛산의 새로운 얼굴이 될 것이다. V 모션 부분이 두드러지게 보일 수 있도록 얼굴을 좀 더 대담하게 다듬었다.

 

 

같은 V 모션 그릴을 적용했다고 하지만 무라노와 알티마의 그릴은 디테일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 무라노가 V 모양에 맞게 그릴 안쪽의 라인을 잡았다고 하면 알티마는 가로로 선을 넣었다. 디테일에 차이를 둔 이유가 있나?
우린 모든 모델이 똑같이 보이는 걸 바라지 않는다. 모든 모델에 똑같은 프런트 그릴을 다는 브랜드도 있지만 우린 그러고 싶지 않다. 얼굴을 봤을 때 닛산이라는 걸 확실히 알려주기 위해 V 모션 그릴을 달았지만 각 모델의 개성을 얼굴에서도 나타내고 싶다.

요즘 여러 자동차 브랜드가 패밀리룩이라는 이름 아래 거의 모든 모델의 얼굴을 똑같이 디자인하고 있다. 패밀리룩을 강조하는 이면에 혹시 비용을 절약하려는 이유도 있진 않나?
패밀리룩을 가져간다고 비용이 크게 절약되진 않는다. 패밀리룩을 따르려는 건 비용보다 전략적인 측면 때문이다. 브랜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전략으로 여러 브랜드가 패밀리룩을 지향한다. 닛산 안에서도 인피니티는 좀 더 엄격하게 패밀리룩을 적용한다. 하지만 닛산 모델은 조금 다르다. 일반적인 고객을 타깃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모델이 똑같이 보인다면 고객층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얼굴은 똑같은데 크기만으로 차별화하면 고객 입장에서는 가격과 사이즈만 놓고 차를 골라야 한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특정 고객을 타깃으로 삼기 때문에 엄격하게 패밀리룩을 적용하는 전략이 잘 먹힐 수 있다. 하지만 닛산은 스포츠카부터 대형 트럭까지 모델이 다양하다. 이들을 총망라하는 하나의 디자인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강렬한 얼굴로 닛산이 말하고 싶은 건 뭔가?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혁신과 흥분이다. 이를 위해 대범하고 강렬하게 얼굴을 디자인하고 있다. 예전엔 디자인이 아주 대범한 모델과 상대적으로 조금 무난한 모델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우리의 메시지를 명확하고 일관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대범하게 디자인하고 있다. 우리가 진출한 시장이 굉장히 많아졌고, 경쟁 회사도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면 고객 역시 닛산이라는 브랜드를 이해하기 어렵고, 기억하기도 어렵다. 

 

많은 자동차 회사가 디자인을 점점 단정한 방향으로 잡고 있다. 푸조는 펠린 룩을 버렸고 신형 MKZ 역시 새로운 컨티넨탈처럼 무난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닛산의 대범한 디자인은 요즘 디자인 트렌드와 맞지 않는 것 아닌가?
대범하게 간다는 게 심플하다는 것과 상반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범한 디자인을 택했다고 해서 트렌드에 역행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대담하고 대범하게 얼굴을 디자인하는 건 ‘닛산이라는 브랜드가 이렇다’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트렌드가 디자인에 영향을 주는 시대가 아니다. 과거엔 이런 게 유행이라고 하면 모든 브랜드가  그렇게 디자인했지만 요즘은 모두가 우르르 유행을 따르진 않는다. 무조건 트렌드를 따르기보다 브랜드의 일관성을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트렌드에 따라 디자인을 자꾸 바꾸면 브랜드의 정체성을 지키기가 어렵다.

 

예전에 재규어 수석 디자이너 이언 칼럼에게 자동차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물은 적 있다. 그는 비율이라고 답했다. 당신의 대답은 뭔가?
비율이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비율은 시작이다. 아주 좋은 비율에 브랜드를 나타낼 수 있는 개성을 얹어야 한다. 두 가지가 잘 어우러져야 좋은 디자인이 완성된다. 하지만 비율을 파괴했을 때 좋은 디자인이 나오기도 한다. 큐브가 그렇고 쥬크가 그렇다. 가끔은 모두가 이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깨뜨릴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리 훌륭한 디자인이라도 상품화하려면 포기해야 할 부분이 있다. 양산차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디자이너로서 양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이것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게 있다면? 
맞는 말이다. 완벽한 디자인이라고 할지라도 양산차에 구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쇼카로 만드는 건 쉽지만 양산차로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것이 달라진다. 우리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을 만든 다음 여기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디자인 요소가 무엇인지를 함께 이야기한다.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은 차마다 다르다. 어떤 차는 앞부분을, 어떤 차는 창문의 모양을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모두가 자기주장만 한다면 일을 진행할 수 없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최초의 스케치에서 양산차 디자인으로 결정될 때까지  보통 1~2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가 바뀌거나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거나, 디자이너가 자신의 처음 디자인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만약 이 상태로 작업이 진행된다면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차가 만들어지게 된다. 의도하지 않은 차가 나오면 최초의 스케치를 가져오라고 한다. 대충 그린 것 같지만 거기에는 디자이너가 하려고 했던 핵심이 들어가 있다. 그 스케치를 보고 차를 봤는데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면 의도했던 디자인이 아닌 거다. 난 디자이너들에게 스케치에 담긴 오리지널 디자인을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오리지널 스케치가 제대로 반영된 모델은 꼭 성공한다. 

 

어릴 적 꿈도 자동차 디자이너였나?
물론이다. 열 살쯤이었나, 막연히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1960년대 GM이나 피닌파리나, 베르토네가 디자인한 차는 정말 근사했다. 그때는 자동차 디자인의 황금기였다. 일본에서 자라서 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책이나 잡지에 실린 그 차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런 차를 디자인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자동차를 디자인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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