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ER 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
GARAGE CONCEPT 백야드 빌더
차를 직접 수리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키트카 정도는 조립할 수 있을 정도의 완벽한 자동차 정비 시설을 갖췄다. 카센터가 아니다. 이건 엄연히 나만을 위한 개인 차고다.
DREAM CARS 포르쉐 959, 아우디 올로드 콰트로 2.5 TDI, BMW R1200R

고교 시절 잡지에서 처음 본 그룹 B 콘셉트카가 1985년에 포르쉐 959로 등장했다. 이듬해 우연히 파리 다카르 랠리의 돌밭을 치마를 걷어붙인 아가씨처럼 아장아장 열심히 달리던 959의 모습은 나를 울컥하게 했다. 공주님께서 고생하신다. 그룹 B 레이서로 데뷔하려던 계획이 틀어져서 랠리에 출전한 그녀와 대입에 실패하고 재수하는 내 모습이 괜히 오버랩 됐다. 

포르쉐 959는 내게는 타임머신이고 미래를 보는 창이었다. 959와 함께 있으면 2016년 지금의 차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고 있는 나는 미래에서 연감(年鑑, almanac) 한 권을 챙겨서 과거로 돌아가 역사를 뒤바꾼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하다. 959는 연감 없이도 30년 미래의 자동차를 이미 알고 있었으니 그녀야말로 영웅이 아닌가. 959가 제시한 실현된 미래를 되짚으면서 나도 재수생 시절에 느꼈던 감상을 되찾는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인생의 새로운 원동력이 된다. 트윈터보, 전자제어 토크 분배 네바퀴굴림, 전자제어 서스펜션, 알루미늄 복합 차체, 마그네슘 경합금 휠과 런플랫 타이어 등 포르쉐 959는 공대 오빠인 내게 중요한 ‘현실적인 영감’의 가장 소중한 원천이다. 

인생은 참 얄궂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기 가장 좋을 차로 생각난 모델이 하필이면 나를 가장 고생시켰던 모델이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보다 완벽한 여행용 차는 없다. 30대의 열정적인 내가 오버랩되는 것도 좋고. 바로 아우디 올로드 콰트로 2.5TDI이다.
Q7 이전에는 아우디에 SUV가 없었다. 하지만 훌륭한 대안이 있었다. 왜건형 크로스오버 모델인 올로드 콰트로가 당시 국내 규정에 따르면 SUV로 구분될 수가 있었던 것. 차동제한장치, 최저 지상고 등의 네 가지 SUV 요건 가운데 세 가지만 충족하면 SUV로 구분됐는데, 올로드 콰트로는 세 가지를 만족시켰다. 

아우디 S4의 엔진을 디튠해서 얹은 올로드 콰트로 2.7T가 먼저 들어와서 독특하고 화끈한 아우디로 마니아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나는 2.5 TDI를 더 기대하고 있었다. 당시 아우디 특유의 단정한 디자인에 무광 플라스틱 범퍼가 주는 적절한 터프함, 왜건과 똑같이 아늑한 실내는 말할 것도 없었다. 66밀리미터나 조절되는 지상고 덕분에 고속도로에서는 세단과 거의 같은 주행 안정성과 오프로드에서도 어지간한 크로스오버 모델들을 능가하는 주파 능력을 뽐냈다. 에어 서스펜션 등 수리비가 좀 들겠지만, 내 개러지에서 직접 수리하면 견딜 만하다. 내 열정의 산물을 내 아이들이 품을 떠나기 전에 느끼게 해주고 싶다. 

배출가스와 출력 경쟁에는 장사가 없었는지 BMW는 2013년부터 박서 엔진을 공유랭에서 수랭식으로 교체했다. 스페셜 모델인 R9T를 제외한 정규 모델에서 공유랭 박서 엔진을 마지막까지 지킨 모델이 R1200R이다.

어릴 때는 병렬 4기통 엔진이 주는 절대적 고성능이 좋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스즈키 하야부사를 끝까지 당겨보기도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수치보다는 박력이 더 중요해졌다. 두카티 몬스터 S2R과 같은 폭력적인 스포츠 트윈 네이키드에게 쉴 새 없이 엉덩이를 걷어차이며 짜릿함을 즐기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질감이 가장 소중하다. 묵직한 쇳덩어리가 매끈하게 돌아가는 BMW 공유랭 엔진의 숙성미는 대체 불가다. 최후에 적용된 DOHC 실린더 헤드는 스로틀 밸브를 열어젖히며 타는 박력을 더해서 좋다. 그리고 R1200R이라는 구성이 좋다. 알아서 다 해주는 R1200GS는 더 늙으면 타련다. 지금은 라이더의 책임감이 더 중요한 로드스터의 박력이 더 좋다. 난 아직 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