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스는 초경량 스포츠카 분야에서 누구보다 인정받는 브랜드다. 하지만 경량 스포츠카 시장은 좁고, 팽창 속도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언제 부터인가 로터스가 데일리 스포츠카를 꿈꾸게 됐다. 그동안 고집스럽게 주장하던 ‘초경량’의 의지도 굽혔다. 불과 몇 년 전에 시작된 일이다. 에보라부터다. 에보라는 3.5리터 엔진을 얹은 새로운 시대의 로터스였다. 수동변속기 모델은 찬사를 받을 만했다. 균형감이 좋았고 로터스 특유의 감각적인 핸들링도 유지했다. 하지만 편의성을 지나치게 추구한 결과 IPS라는 자동변속기를 성급하게 올린 것이 실수였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이 됐다. 가벼운 무게가 이점인 구조에서 추가된 어정쩡한 무게와 편의성이 발목을 잡았다. 로터스는 에보라IPS 자동변속기가 ‘완벽한 GT’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론 경쟁 모델과 편의성으로 대결하긴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초경량 스포츠카 시장에서 인정할 존재도 아니었다.

 

그러나 2014년 5월, 현 로터스 CEO인 장마르크 게일스가 본사로 부임하면서 모든 제품이 발전에 물살을 탔다. 그는 작년에 <모터 트렌드>와 한 인터뷰에서도 “앞으로 2년 동안 생산할 로터스 제품 모두가 이전보다 더 빠르고 가벼워질 것이다”라고 밝힌 적 있다. 실제로 이런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짧은 시간 많은 것을 바꿨고, 투자를 늘렸다. 회사 내 초경량 차체 연구소의 기능을 강화하고 그동안 생산 공정 전반에서 벌어진 문제도 해결했다(효율성과 스케줄 부분). 아주 작은 시도였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제품의 상품성이 올라갔다.

 

 

 

새 CEO가 부임한 후 가장 큰 효과를 본 제품은 에보라 400이다. 이전보다 좋은 소재를 사용하고, 마무리와 설계를 개선해 더가벼워지고 품질도 향상됐다. 생산 시간을 이전 대비 20시간, 비용은 10퍼센트 줄이기도 했다. 장 마르크 게일스의 말처럼 에보라400은 실제로 이전보다 더 빠르고 가벼운 차가 됐다. 3.5리터 슈퍼차저 엔진은 406마력(41.8kg·m)으로 출력을 올리고, 무게는 이전 보다 약 15킬로그램 준 1425킬로그램이다(자동변속기 기준, 수동은 22킬로그램 경량화).새로운 실내 디자인과 편의장비의 추가로 상품성도 끌어올렸다.

 

로터스는 이 차가 ‘브랜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자동차’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사실 이차의 핵심은 잘 조율된 GT에 있다. 편의성을 포기한 극단적인 주행 성능은 어디까지나 엑시지의 담당. 따라서 에보라 400은 고성능과 부드러움의 조화를 이루는 게 관건이다. 주행 모드는 3가지로 구성된다. 시동을 켜면 노멀모드에 들어가고, 변속기와 엔진의 반응성을 끌어올리려면 대시보드 상단의 스포트와 레이스 버튼을 누르면 된다. 기본 모드에서 주행 감각은 예상 밖으로 나긋하다. 노면이 거친 시내를 달리는 차의 반응에 감탄하게 된다. 변속기는 나긋하고, 승차감은 부드럽다. 엔진만이 약간 거칠다. 그렇다고 문제가 될 이유는 없다.

 

가변 배기시스템을 이용해 배기 소음을 억제하면 온 세상이 조용하다. 슈퍼차저 풀리의 회전 소리가 기분 좋게 등 뒤에 머물 뿐. 에보라 400은 장거리는 물론이고 출퇴근에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차다. 하체 세팅 기술이 놀랍다. 서스펜션은 단조 알루미늄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 구조에 아이바흐 스프링과 빌슈타인 댐퍼를 조합했다. 그리고 비틀림 강성을 높인 알루미늄 압출 접합 섀시와 물려 하체를 강하면서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유도했다. 실제로 확인해보면 타이어와 휠 하우스 사이의 공간이 손가락 두세 개 정도다. 댐퍼스트로크에 한계가 명확하다는 의미로 풀이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이런 승차감을 만들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반면 주행 모드를 스포트로 바꾸면 차의 성격이 날카롭게 변한다. 일단 가변 배기 시스템은 엄지를 추켜세울 만하다. 에보라 400의 배기음은 지난 몇 년간 들었던 수많은 스포츠 카 가운데 으뜸이다. 저회전에서 슈퍼차저 풀리의 회전 소리로 시작해서 3000rpm을 넘어서며 소리가 절정으로 치닫는다. 흡사 소음 제한이 없는 경주차의 소리다. 촉매나 소음장치 없이 배기 매니폴드에서 바로 소리가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게다가 시스템은 똑똑하다. 언제나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기분 좋게 달릴 때만 우렁차다. 저속이나 반대로 아주 강하게 차를 밀어붙일 때는 배기 압력 유지를 위해 밸브가 닫히며 소리가 줄어든다.

 

에보라 400의 가속력은 화끈하다. 토크감보다는 날렵하게 찌르고 들어가듯 속도를 높인다. 시승차는 자동변속기 모델로 제원상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에 4.2초가 걸린다. 노멀 모드에서 약간 울렁거리며 반응했던 변속기가 스포트 모드에서는 절도 있게 반응한다. rpm 보정은 여유롭지만 클러치 미트 시점은 듀얼클러치처럼 빠르다. 클러치와 변속 타이밍 제어기구, ECU에 변속 프로그램이 업그레이드된 결과다.

 

공기역학 특성에도 신경 쓴 흔적이다. 자동변속기 모델은 시속 280킬로미터(수동 300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다. 자료에 따르면 시속 240킬로미터 이상에서 약 32킬로그램의 다운 포스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 정도 수치라면 고속에서 발생하는 양력을 상쇄할 정도라고 풀이할 수 있다. 입구를 크게 키운 앞범퍼와 안쪽으로 말려 들어간 사이드 스커트, 각을 세운 스포일러가 이런 역할을 담당한다. 실제 테스트 결과 에보라 400은 고속 주행에서도 움직임이 차분했다. 앞머리와 엉덩이의 균형이 잘 잡혀 있었다. 저속에서는 앞이 가볍게 반응하고, 고속에선 그보다 묵직하게 방향을 바꿨다.

 

 

 

스포트 주행 모드는 트랙처럼 넓은 공간보다 굽이치는 산길처럼 좁은 공간에 어울렸다. 좁고 빠른 코너에서 에보라의 핸들링은 중립적으로 보였다. 일부러 과격하게 가속페달을 밟지 않는다면 코너를 칼처럼 베며 탈출한다. 앞바퀴가 약하게 언더스티어로 미끄러지는 순간도 있다. 그런데 뒤 타이어는 아직 여유가 있다는 듯 엉덩이를 꽉 잡는다. 운전자에게 차를 제어하라는 신호다. 그럼 스티어링휠을 약간 풀었다 다시 빠르게 감는다. 그래야 원하는 만큼 속도를 유지하며 회전시킬 수 있다. 움직임은 직관적이다. 머리로 그린 라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라인이 부풀거나 줄어들면 운전 테크닉에 실수가 있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차체가 움직이는 감각과 드라이버에게 전해지는 피드백, 미간을 찡그리게 하는 환상적인 사운드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 자신감이 붙으면 레이스 모드로 들어간다. 자세제어장치가 꺼지며 에보라 400이 고삐를 풀어 던진다.

 

사실 운전자의 테크닉이 정확하다면 스포트와 레이스의 차이가 크지 않다. 자세제어장치가 꺼져 좀 더 활기차게 언더스티어나 오버스티어를 유도하도록 해줄 뿐이다. 고속 코너링을 시작하며 머리로 라인을 그리고는 약간 빠르게 가속을 요구한다. 그러자 찰나의 순간 엉덩이가 빠르게 흐른다. 타이어가 ‘끽’ 소리를 내면서 동시에 일어난다. 신경질적인 움직임은 아니다. 당황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 이럴 때는 가속페달을 지그시 유지한 채로 드리프트를 이어가는 것이 좋다. 그럼 토센 기어 타입 LSD(토크 비례식)가 뒷바퀴에 일정한 동력을 보내며 차를 다독이는 데 도움을 준다. 미드십 구조는 이럴 때 다루기 쉽고 안전하다. 이 차는 저속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파워 슬라이드보다 이렇게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미끄러짐에 대응하기가 쉽고 재밌다.

 

에보라 400은 다루기 편하고, 빠르고 잘달렸다. 일상적으로도 쓰임새가 좋고, 패키지 면에서도 매력적이다. 물론 쟁쟁한 경쟁자가 즐비한 가격대에 위치한다는 것은 여전히 문제다. 로터스는 고집처럼 포르쉐를 정조준하고 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에보라 400 정도의 실력이면 경쟁자를 의식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