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SUV들의 욕심이 갈수록 커진다. 날렵한 디자인과 공간의 효율성, 첨단 편의장비뿐 아니라 이제는 스포츠카 뺨치는 주행 성능까지 탐낸다. 250마력 이상의 SUV가 흔한 시대다. 그러니 광기에 사로잡혀 출력을 500마력 이상으로 높인 SUV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세상에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차는 없다. 따라서 SUV가 아무리 ‘고성능’을 강조해도 어딘가는 허술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허술하다는 것은 제대로 된 운동 성능을 발휘하기에 부족하다는 뜻이다. 예컨대 아무리 뛰어난 성능의 SUV도 코너에서 타이어를 자유자재로 미끄러트릴 정도로 밀어붙일 수 없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타이어와 브레이크를 몇 배로 혹사해야 한다. 사실 정신이 제대로 박혔다면 이런 차로 도로에서 타이어 한계까지 밀어붙이지도 못한다. 그나마 지금까지 고성능 SUV가 ‘안전한 차’로 분류되는 것은 전자장치 때문이다. 복잡한 연산 구조의 무수히 많은 안전장비가 운전자를 돕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고성능 SUV를 바라보는 내 시각은 회의적이다. 이들에게 고성능은 단지 자신의 우월함을 뽐내는 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는 영양가 없는 계륵(鷄肋) 같은 존재다. 물론, 어디든 예외가 있는 법이다. 포르쉐 마칸 GTS가 그랬다.

포르쉐에 GTS란 다방면에 뛰어난 멀티 플레이어에게 주는 ‘훈장’이다. 성능을 효과적으로 강조한 ‘S’와 최상위 플래그십 모델 ‘터보’ 사이에서 양쪽의 장점을 모두 수용한 모델을 말한다. 잘 짜인 패키지로 가격은 상대적으로 싸고, 동시에 더 좋은 구성이 돋보인다. GTS는 다른 라인업에 없는 눈부신 표현력이 자랑이다. 아주 작은 부품의 디테일에서 최종적으로는 차의 움직임과 소리, 감성까지도 완전히 바뀐다. 게다가 전체 라인업 중 가장 스포티하다.

마칸 GTS도 이 개념을 충실히 따른다. 이 차를 짧게 설명한다면 ‘더 민첩한 핸들링과 유연한 코너 돌파 능력’이다. 타협은 없다. ‘운전의 즐거움’이라는 맹목적 아래 진화했다. 따라서 단순히 우렁찬 소리를 내고 빠르게 달리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 운전자에게 어떤 운전 감각을 전달해야 하는지, 어떤 수준의 달리기 성능을 만족시켜야 하는지 제대로 안다.

마칸 GTS의 개성은 외형에서부터 드러난다. 커다란 흡기구와 공기역학에 신경 쓴 앞 범퍼, 무광 블랙 그릴과 헤드라이트가 고성능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20인치 휠과 스포츠 배기 머플러도 GTS 디자인의 일부다. 실내의 구성은 S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대신 알칸타라 소재를 곳곳에 써서 훨씬 고급스러운 분위기다. 전용 스포츠 시트로 스포츠카의 감성도 멋지게 담았다. 신형은 개선된 인포테이먼트 시스템(PCM)으로 이전보다 훨씬 직관적인 명령도 가능하다. 스마트폰 화면을 다루듯 멀티터치(슬라이드, 줌 인·아웃)가 가능해서 많은 기능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키가 큰 911 좁고 굽이치는 내리막길을 빠르게 달리면서도 운전에 부담이 없었다. 단지 시트 포지션이 높을 뿐이다.

 

나는 이 차를 스페인의 어느 섬에서 만났다. 지난달 국내에도 소개된 뉴 911 카레라와 함께 진행된 글로벌 시승 이벤트에 등장했기 때문이다(올 1월). 당시에는 새로운 911의 테스트 드라이브 행사에 마칸 GTS를 곁다리로 공개하는 줄 알았다. 시선을 분산시키는 전략이라 의심했다. 터보 엔진을 얹은 새로운 911의 인상이 그만큼 약하거나, 혹은 마칸 GTS를 최소한의 비용으로 홍보하려는 식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은 완전히 틀렸다. 911의 진화는 충분히 의미가 있었고, 마칸 GTS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적인 달리기 성능을 선보였다.

사실 제원상으로 비교하면 마칸 GTS는 아랫급인 S와 차이가 크지 않다. 3.0리터 트윈터보의 엔진은 같고 터보 부스트만 1.2바(0.2바 증가)로 높였다. 출력도 고작 20마력 오른 360마력이다(최대토크도 4kg·m 늘어 50.9kg·m). 서스펜션은 여느 GTS처럼 15밀리미터 낮아졌고, 가변 댐퍼 컨트롤을 지원하는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PASM)에 ‘성능 강화’ 설정이 추가됐을 뿐이다. 딱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비슷한 크기의 SUV로는 드물게 앞뒤 타이어 사이즈를 제법 차이가 나게 쓴 정도다(앞 264/45 R20, 뒤 295/40 R20).

아주 미묘한 차이지만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굽이치는 산길을 따라 속도를 높이며 나는 머리카락이 주뼛 서는 것을 느꼈다. 코너를 향한 움직임이 기존의 마칸, 아니 SUV라고 믿기지 않았다. 마칸 GTS 덩치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라인을 따라 달렸다. 코너의 입구로 뛰어들 때 네바퀴굴림이 떡 버티고 서서 방향을 바꿀 시간을 충분히 줬다. 탈출할 때는 앞뒤 바퀴에 동력이 효과적으로 분배됐다. 네 바퀴의 움직임이 거칠지 않았다. 부드럽게 치고 들어와 날렵하게 반응하며 회전력에 일조했다. 최신형 포르쉐 스포츠카에 들어가는 미끄럼 방지 장치(ASR)나 트랙션 매니지먼트(PTM), 전자제어 차동 잠금장치인 토크벡터링 플러스(옵션) 등이 더해진 결과였다.

마칸 GTS는 엉덩이도 가볍게 회전시킬 줄 알았다. 급한 코너에서 가속페달을 물고 있을 때 언더스티어로 반응하다가 코너 탈출에서 페달을 강하게 밟는 순간 약한 오버스티어로 특성이 달라졌다. 제대로 만든 스포츠카처럼 스로틀로 움직임을 조종할 수 있었다. 동시에 스티어링휠로 타이어의 남은 접지력을 전했고, 시트로 섀시의 움직임을 느끼게 했다. 자신감이 최고조로 올랐다. 1.9톤에 달하는 차로 산길에서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순간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SUV가 아니었다. 덩치 큰 911 카레라로 보는 게 더 정확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가 무척 분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다운시프트 때 “펑! 펑!”거리며 주변의 시선을 끌었다.  

머리가 멍했다. 이 덩치로 코너에 뛰어드는 이율배반적인 움직임이 내 감각을 파괴했다. 스포츠카라는 타이틀로 봐서도 크게 불만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SUV를 타면서 이렇게 재밌고 짜릿한 경험도 드물 것이다. 이 차를 타면서 내 경험치는 순간적으로 확장된 느낌이었다. 목표가 정확한 차를 탔을 때 느끼는 일종의 ‘만족감’이었다. 그만큼 잘 조율된 차였다.

 

 

 

 

SPECIFICATION

가격 6만7200달러 레이아웃 앞 엔진, 4WD, 5인승, 5도어 왜건 엔진 V6 3.0ℓ DOHC 트윈터보, 360마력, 50.9kg·m 변속기 듀얼클러치 7단 자동 공차중량 1895kg 휠베이스 2807mm 길이×너비×높이 4692×1926×1609mm 복합연비 10.8~11.3km/ℓ(미국 기준) CO₂ 배출량 207~215g/km(미국 기준) 한국 출시 2016년 4월(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