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봐. 생각보다 괜찮은데?’ 기아는 지난 8월 남양연구소 내 기아디자인센터를 처음으로 기자들에게 개방했다. 엄밀히 말하면 앞마당만 개방해서 4세대 스포티지를 놓고 일종의 미리 보기 행사를 열었다. 지난 4~5년간 세계 자동차 시장은 디젤과 도심형 SUV가 끌어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중에서 소형 SUV는 출신을 막론하고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 이 점을 의식해서인지 기아는 직원들도 못 들어간다는 디자인센터를 취재진에게 개방하고 기자들을 맞이했다. 대신 휴대전화 렌즈에 보안 테이프를 붙여 가렸다.

현대 투싼은 깔끔하고 정제된 디자인을 추구한 반면 스포티지는 개성표출에 주안을 둔 디자인이다.

새로운 스포티지에 대한 현장 반응은 앞서 말한 그대로였다. 공격적인 앞모습과 안정적인 볼륨을 고루 추구했고, 제일 예뻐 보이는 건 뒤에서 봤을 때다. 정락(제품기획 총괄) 부사장 등의 일장 연설은 뒤로하고 현실적으로 가장 와 닿았던 것은 디자인 CAS(Computer Aided Styling) 팀을 통한 디자인 콘셉트의 소개였다. 현대·기아차는 제품 개발 단계에서 CAS를 통해 전체적인 비례부터 부속의 질감까지 조정해나가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해외 시장을 노린 모델인 만큼 외관 컬러 선정에도 CAS가 활용된다. 자연풍경과 유럽의 오랜 도시, 현대의 도로까지 실제에 거의 가까운 배경에 차를 놓고 컬러 톤을 고른다. 이들은 스포티지와 폭스바겐 티구안과 혼다 CR-V를 동일한 배경, 동일한 비율로 한 화면에 놓고 각사 제품의 디자인 특징을 보여줬다. 티구안은 한국과 유럽 시장, CR-V는 북미 시장의 스포티지 경쟁 모델이다.

차문은 열리지 않았지만 밖에 내놓은 실내 내장재 디자인만 봐도 타깃인 3040을 충분히 신경 쓴 티가 났다. 별도로 뜯어낸 시트와 원단, 부속을 공개했는데 소파처럼 털썩 앉아도 꽤 만족스러웠다. 현장에서 만난 실내 디자이너는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신차 발표를 앞두면 누구나 각 부분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기아도 마찬가지다. U2 1.7리터 디젤 엔진은 7단 DCT와 만나 저중속 성능과 연비 개선을 꾀했다(하지만 U2 1.7리터 디젤은 10월에 추가된다). 서스펜션 강성을 올렸고 동급 최고 수준의 조용함을 갖출 것이라고 한다. 고장력 강판 사용 비중을 51퍼센트까지 늘려 차체 평균 강성을 66.5퍼센트 올렸다고 한다. 고장력 강판은 중세 기사 갑옷처럼 차 전체에 두르는 것이 아니라 설계에 따라 달라지므로 비율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어쨌든 개선의 주요 골자를 보면 전보다 몸놀림이 무겁고 딱딱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싱글부터 가족까지 모두 노리는 스포티지의 기존 타깃을 생각하면 좋기도 하고 일부는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물이 공개된 이후 여전히 ‘호랑이코’ 그릴을 제외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마(보닛) 힘줄과 헤드램프 위쪽이 포르쉐 카이엔을 닮았고 K9에서도 어색해 보였던 큐브형 LED 안개등은 부품사 살리기의 노력인가 싶다. 그러나 이번 판은 기대해보고 싶다. 나도 잊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기아 스포티지는 1993년 7월 세계 최초로 콤팩트 SUV 장르를 개척한 모델이다. 당시 이 정도 크기에 도심 주행을 주목적으로 발전한 SUV는 없었다. 둥근 엉덩이가 매력적이었던 2세대 스포티지를 탄 남자는 여자들에게 착실한 멋쟁이로 취급받았다. 노력의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 법이니까 기대하고 싶다. 스포티지는 미리 보기 행사가 열린 뒤 한 달쯤 지난 9월 중순에 출시됐다. 2.0리터 R 디젤 엔진 모델만이었고, 가격은 2346만~2842만원. 해외 시장엔 내년 초쯤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