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든 떠나기 좋은 푸조 2008
“큰 차는 부담스럽지.” 어리석은 짓이었다. 다른 분도 아닌, <작은 차 예찬>의 저자 박규철 편집위원에게 작은 SUV를 사야 할 이유를 묻다니. 이번 시승의 주제는 은퇴한 중장년을 위한 SUV. 난 시승 내내 그의 옆에 딱 붙어 있었다. 그리고 연신 질문을 던졌다. 그는 2008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어디든 훌쩍 떠나기 좋을 것 같거든.”

 

박 위원이 간추린 은퇴한 중장년층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① 자녀와 함께 차 탈 일이 별로 없다. ② 연금생활을 염두에 둬야 하니 비싼 차는 부담스럽다. ③ 운전감각이 예전 같지 않으니 덩치 큰 차는 원치 않는다. ④ 부부끼리 여행 다닐 일 많을 테니 행동반경에 제약(연비, 험로 주행성능)이 적었으면 좋겠다. ⑤ 늙수그레하거나 싸 보이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가만 보니 ①번과 ③번 빼면 내가 원하는 가족용 자동차의 조건과 고스란히 겹친다. 아마도 그래서일 거다. 소형 SUV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치솟는 중이다. 사실 브랜드마다 주장하는 타깃 고객엔 차이가 있다. 링컨은 MKC를 선보이면서 50~60대 베이비부머를 노렸다고 말했다. 포르쉐는 마칸을 공개하며 보다 젊은 고객을 원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시장마다 각 브랜드의 전략과 타깃은 바뀐다. 난 ‘중장년층에게 어울리는 SUV’라는 전제가 또 다른 편견을 만들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난 주관적인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의 2008을 따져보기로 했다. 나도 은퇴만 하지 않았을 뿐 시작점에 발을 걸친 중년. 타깃으로서의 자격은 얼추 갖춘 셈이다.

 

이제부턴 전적으로 내 이야기다. 푸조 2008은 장르 파괴 유행이 낳은 CUV다. 소형 왜건에 SUV 특유의 까슬까슬한 야성을 살짝 덧씌웠다. 차동제한 잠금장치나 저속기어는 언감생심. 심지어 네바퀴굴림도 아니다. 앞바퀴굴림이다. 여느 왜건과 다른 점이라면 범퍼 밑엔 커버, 차체 아래쪽엔 검정 플라스틱을 두른 정도. 그런데도 박 위원에게 ‘어디든 훌쩍 떠나기 좋을 것 같은’ 희망을 품게 한다.

 

박 위원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나 역시 그렇게 느꼈다. 오너에겐 내 차가 어떻게 보이는지도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푸조 2008은 타고 있는 오너, 그리고 2008을 바라보는 남 사이에서 모종의 합의를 이끈다. 결론은 일관되고 명쾌하다. ‘어디든 훌쩍 떠나기 좋을 것 같은’ 차다. 같은 이유로 2008은 기특하게도 오너의 시간적, 금전적 여유도 암시한다.

 

좋거나 싫거나. 한 세대 전만 해도 푸조 디자인에 대한 반응은 이랬다. 이젠 대중성을 확보했다. 고양잇과 동물을 연상시키는 펠린 룩을 등지면서부터다. 차분하고 간결하게 다듬은 푸조의 새 얼굴은 남녀노소 누구와도 궁합이 좋다. 너무 튀거나 딱히 지루하지 않다. 무엇보다 ‘작은 차니 귀여워야 한다’거나 ‘푸조니까 튀어야 한다’는 강박을 훌훌 털어낸 듯해 좋다.

 

실내에 들어서면 2008의 세그먼트를 잊게 된다. 큼직한 유리창 덕분에 시야가 시원시원해서다. 천장 대부분도 커다한 유리 한 장으로 씌웠다. 그래서 실제보다 더 넓고 높은 차에 앉은 듯한 확신을 준다. 외모처럼 실내도 푸조를 뺀 세상 어떤 차와 닮지 않았다. 앙증맞은 스티어링휠을 조몰락거리고, 그 위에 걸친 계기반을 흘끔흘끔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트는 독특한 패턴의 직물과 인조가죽으로 씌웠다. 쿠션은 푹신하되 허벅지와 옆구리를 죌 부위는 우뚝 솟았다. 그래서 앉았을 때 편안하면서도 안정적이다. 뒷좌석도 기대 이상 넓다. 무릎은 물론 머리 공간도 여유만만이다. 뒷좌석이 예비용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든 208과 대조적이다. 2008과 208은 뼈대를 나눈 사이. CUV의 장점이 빛나는 순간이다.

 

짐 공간은 2008의 ‘숨은 진주’. 반듯한 직사각형 모양이어서 구석구석 꽉 채우기 좋다. 6:4로 나뉜 뒷좌석을 접어 360~1194리터까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트렁크 양쪽 벽엔 그물망을 씌워 작은 물건을 담기 좋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트렁크 매트를 들추면 22리터의 수납공간이 나온다. 경험상 뒷좌석 한 개를 접을 경우 3명분의 간소한 캠핑 장비는 삼킬 듯하다.

 

직렬 4기통 1.6리터 디젤 터보(e-HDi). 최고출력 92마력, 최대토크 23.5kg·m를 낸다. 변속기는 자동 6단 MCP. 효율에 ‘올인’한 구성이다. 가속은 느긋하다. 서두른다고 빨리 갈 수도 없다. 엔진도 아담하거니와 MCP는 기어 갈아탈 때마다 숨을 고른다. 전망 좋은 창가에 앉아 사파리를 구경하는 기분으로 여유롭게 몰 때 제일 기분 좋다. 

 

앞뒤 방향 움직임은 다소 헐렁하다. 아담한 심장과 평범한 브레이크 때문이다. 반면 누가 푸조 아니랄까봐 좌우 몸놀림은 쫄깃쫄깃하다. 특히 이날 굽잇길을 함께 달린 프랑스 출신의 QM3보다도 확연히 생기 넘쳤다. 노면을 끈끈히 쥐고 리듬 타듯 궤적을 그릴 때 가슴 뿌듯한 성취감이 밀려온다. 다만 등 떠미는 추진력이 약해 몰입할 만큼 운전재미가 뛰어나진 않다.

 

원가 압박이 심한 체급답게 소음과 진동은 어느 정도 스민다. 연비(복합)는 리터당 17.4리터. 조금만 신경 쓰면 싱겁게 넘어설 수 있다. 파크 어시스트를 갖춰 주차는 물론 칸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쉽다. 은퇴한 장년층에겐 2008의 낯설고 젊은 감각이 다소 부담스러울는지 모른다. 그러나 은퇴하지 않은 중년의 나에겐,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가격도 착하게 잘 나왔다. 글•김기범(<로드테스트> 편집장)

 

SUV의 원초적인 골격, 쉐보레 트랙스
우리는 50대 이상의 큰형님과 누님들에게 이런 작은 차를 타라고 추천이나 권유하는 것이 아니다. 놀랍게도 이미 B 세그먼트 SUV 판매량의 많은 부분을 50대 이상의 소비자들이 점유하고 있다. 그런데 자동차 브랜드는 50대 이상의 은퇴자들에게 ‘이 작은 SUV를 사세요’라고 광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밝고 화사한 면을 강조하거나 자극적인 이미지를 덧씌워 젊은이에게 광고한다.

판매 볼륨을 젊은이들에게까지 넓히려는 것일까? 아니다. 지금 이 시대 젊은이들은 차를 사기 힘들다.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고 알바 자리 하나 구하는 것도 힘들다. 설사 취업이 됐다 하더라도 학자금 대출받은 것 갚느라 허리가 휜다. 대출금을 다 갚으면 결혼하고 집 전세금 넣고 애가 생긴다. 그런데도 이들이 차를 살 여유가 있을까?

왜 자동차 브랜드는 젊은이들에게만 광고를 할까? 그들은 광고를 하는 게 아니라 차에 젊은 이미지를 입히는 거다. 요지는 이거다. ‘우리는 이 차를 젊은이들을 위해 만들었다. 당신이 이 차를 타면 젊어 보일 것이다. 젊게 살고 싶다면 이 차를 사라.’ 소비자 입장에선 ‘이 차는 작아서 운전이 편하다. 실용성도 갖췄다. 가족 단위가 아닌 나에게 잘 맞는다. 하지만 내 나이에 타기에는 차가 너무 작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타는 차라는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하면 싼 맛으로 탄다는 걸 숨길 수 있다.’

자동차 브랜드는 20대에게 이 차를 광고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50대에게 적절한 구실과 핑계를 제공하는 것이다. 쉐보레 트랙스 광고를 보자. 젊은이들이 창고에 모여 즐겁게 일하고 노는 모습을 보여준다. 티볼리는 대놓고 ‘내 생애 첫 SUV’라고 한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밑바닥에 깔고 소형 SUV 구매를 고려 중인 50대 이상의 소비자들에게 이 차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의견을 주는 것이지, 이 차를 사라고 추천하는 것이 아니다.

트랙스는 여기 모인 차들 중 차체가 가장 길다. 그런데 휠베이스는 QM3와 티볼리보다 짧다. 오버행이 길다는 건 주행 및 조종성에서는 그다지 좋은 평을 받을 수 있는 골격이 아니다. 실제로 다섯 대의 차 중에서 트랙스의 운동성능을 좋게 평가한 저널리스트는 없었다. 2008의 핸들링을 칭찬하고 쥬크의 재기발랄함에 흥미를 보였으며 QM3의 민첩함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트랙스가 아주 떨어지는 건 아니다. 단단한 섀시 덕분에 키가 가장 큰데 휘청거리지 않는다.

실내도 넓다. 헤드룸이 넉넉하고 뒷자리 무릎공간도 훌륭하다. 그런데 트렁크 용량(356리터)이 쥬크(251리터)를 제외하면 가장 작다. 뒷자리를 뒤로 밀어낸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건 장점이다. 우리가 트렁크 공간을 꽉 채우고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설령 짐을 많이 실어야 한다 해도 뒷자리 등받이를 접으면 그만이다.

트랙스의 최대 장점이자 특징은 SUV의 기본 골격을 그대로 따른다는 것이다. 시트 포지션이 가장 높아 시야가 넓다. 타고 내리기에도 적당한 높이다. 지상고가 높다는 건 그만큼 오프로드에서 유리하게 작용한다. 물론 이 차는 앞바퀴만 굴린다. 하체를 긁고 다닐 확률이 제일 낮다는 말이다. 급진적인 변화나 독창적인 외형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형님, 누님들이 고려해볼 만하다. 그뿐이다. 내가 트랙스에게 할 수 있는 칭찬은 여기까지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스타일에서는 QM3와 티볼리에 밀리고 연료효율성도 내세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차값도 국산차 중 가장 높다. 그나마 1.4리터 휘발유 터보 엔진 출력이 140마력으로 다른 차에 비해 꽤 높지만 멍청한 변속기가 출력의 절반은 잡아먹는다. 오는 4~5월경에 1.6리터 디젤 모델이 출시될 것으로 알려졌는데, 1.4리터 휘발유 엔진과 똑같은 변속기에 종감속비만 달리한 유닛이라면 난 이 차도 적극 추천 못하겠다. 분명히 출력과 기름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닐 테니까. 글•이진우

 

 

나를 들뜨게 하는 르노삼성 QM3
나이가 들어 은퇴생활로 접어들었다. 이제 연금으로 살아가는 생활에 여유가 많지 않다. 백 살까지 산다는 요즘,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는 우리 부부만의 생활을 그려본다. 작은 차를 생각하는 이유다. 과거에는 중대형 세단을 탔지만 이제 살림을 줄이고, 한편으로 재미를 찾아 작은 SUV를 찾게 됐다. 우리 부부의 버킷 리스트에는 틈틈이 자동차로 하는 전국 여행이 들어 있었다.

그러던 중 눈에 띄는 것은 르노삼성의 QM3이다. 그동안 르노삼성은 비교적 커다란 차들을 내놓았다. 프랑스 차들이 큰 차보다 작은 차에 비교우위를 갖는데, QM3는 진짜 프랑스 차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았다.

심심한 중형 세단을 타다가 작은 프랑스 차를 타는 것에 대한 설렘이 크다. 작은 차는 젊은이의 차로 여겨지지만, 나이 들어 경제적이고 센스 있는 카라이프를 추구하는 나에게도 꼭 들어맞는다. 은퇴를 한 이제 체면보다는 실용이다.

QM3 디자인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프랑스 베스트셀러 르노 클리오를 살짝 들어 올린 것 같은데, 다들 예쁘다고 한다. 지붕 색을 달리한 투톤 페인트로 미니에 못지않은 흥겨움을 더하고, 흐르는 듯 부드러운 선에는 르노의 내공이 담겼다. 르노의 최신 디자인을 리드하는 차 QM3는 SUV 같은 터프함을 더하면서 나를 들뜨게 한다. 네바퀴굴림 차가 아닌데도 어디든지 달려갈 것만 같다.

여기저기 튀는 색으로 악센트를 준 젊은이 취향의 꾸밈새는 내 나이에 조금 남세스럽지 않나 싶지만, 사실 내 마음은 19살 청춘이다. 오히려 핑계거리가 되어 좋았다. “얘네는 이런 차밖에 안 들여와…. 이것밖에 고를 수가 없었어.” 그러면서 나는 프랑스 차의 발랄함을 즐긴다. 내 마음이 젊다.

해치백 구조는 기능과 실용적인 면에서 더없이 편하다. 앞뒤 공간이 모두 넉넉한 QM3는 우리 부부의 여행 짐을 싣기에 충분한 크기다. 해치백 디자인은 만약의 경우 쓸모가 큰 화물공간을 만들어준다. 적당한 높이는 나이 든 사람이 타고 내리는 데도 편하다. 그 외 주차의 편리함 등 작은 차의 장점은 끝이 없다.

대시보드 디자인은 간단하면서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심심한 듯 감각적인 디자인에 조형미가 돋보이지만, 전체적으로 QM3에게 겸손함이 묻어난다. 인생의 끝자락에 가까워 오면서 겸손이라는 것을 깨닫는 나에게 맞는 것 같다. 간단한 뒷자리 역시 검소함으로 다소곳하다.

서랍식의 글러브박스, 시트 등받이에 달린 고무줄 주머니, 벗겨낼 수 있는 가죽 시트커버 등 모두가 실제 쓰기에는 불편하거나 필요 없어 보이지만, 그것이 프랑스 취향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다. 안팎의 그래픽 데커레이션은 그 세련됨이 내 수준에 딱 맞는다. 프랑스 차만의 매력이 물씬하다.

조용한 디젤 엔진은 그 힘이 놀라웠다. 1300킬로그램의 무게를 가볍게 훅훅 밀어내듯이 달린다. 90마력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힘차다. 내가 운전하는 동안 95퍼센트의 시간을 보낼 시속 110킬로미터 이하의 중저속에서 최적화된 성능이었다.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통한 파워 전달은 한 치의 낭비 없이 있는 힘을 모두 모았다.

1461cc의 디젤 엔진은 벌써 5세대에 이르면서 1000만대 이상 팔린 숙성된 엔진이다. 르노의 여러 차에 쓰일 뿐 아니라 닛산, 벤츠 등에도 얹힌다. 승용 디젤 엔진은 역사가 오랜 프랑스 차들이 최고가 아닌가 싶다.

물 흐르듯 유연한 파워트레인으로 운전이 쉬웠다. 가벼운 스티어링휠은 절도가 있고 깔끔하다. 부드러운 서스펜션이 돌아가는 코너마다 자연스러운 거동을 만들었다. 속도를 높이면 약간 높이 앉아 휘청대는 스릴에 즐거움을 더한다. 눈으로 보는 프랑스 예술만이 전부가 아니다. 춤추듯 달리는 즐거움에서 프랑스 차만의 매력이 진하다.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13.5초는 평범한 듯싶지만 내 나이에, 내 운전 습관에 만족스러운 차였다. 이런 동력성능에 연비가 리터당 18.5킬로미터다. 그저 황송스러울 뿐이다.

QM3가 속한 B 세그먼트 SUV는 요즘 유럽에서도 가장 핫한 시장이다. 모든 연령대에서 이 급의 차얼 선호한다. QM3는 우리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르노의 자랑이고 프랑스의 명작이다. QM3는 디자인, 주행성능, 연비 그리고 실용성과 가치에서 뛰어난 차였다. 국내 시장에서도 지난해 1만8000대가 판매되면서 그 우수성이 입증됐다. 영악한 소비자는 좋은 차를 알아보았다. 내 눈에는 QM3가 오늘 모인 차 중에 으뜸이다. 글•박규철(편집위원)

 

확실히 튀는 닛산 쥬크
‘은퇴한 50대 이상 중장년을 위한 차’라. 외모는 50대지만 실제 나이는 이제 막 40대에 들어선 나에게는 좀 난감한 주제다. 다만 아직 은퇴 후의 삶을 쉽게 짐작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주변을 돌아보면 살짝 불안해지기도 한다. 슬슬 그 나이에 내 삶을 대입해볼 만하다. 50대라면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임원급은 되어야 버틸 수 있는 나이고, 그 나이대인 친척들을 봐도 이미 퇴직 후 자영업 전선에 뛰어든 분들이 많다. 그쯤 되면 자녀들은 웬만큼 자기 힘으로 살아가기 시작할 무렵이니, 다른 건 몰라도 가족을 위해 나 자신을 포기하며 살아왔다면 자의든 타의든 사회생활과 관련한 여러 가지를 내려놓고 자아를 찾고 싶은 욕구가 커질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 시선으로 닛산 쥬크를 바라본다. 생김새는 웬만큼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살아온 나로서도 좀처럼 적응하기 쉽지 않다. 크기는 분명 소형 해치백에 가까운데,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차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양새가 비현실적이다. 한껏 부푼 바퀴 주변은 우람해 보이면서도, 앞뒤는 SUV답지 않게 날렵하다. 그러면서도 다른 차들과 닮은 구석을 찾기 어려운 개성이 담겨 있다. 보편적인 가치관과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여러 면에서 상식과 맞지 않는 혼란으로 다가올 모습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평범한 차가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은 차 크기로 사회에서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텐데, 쥬크를 탄다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남다른 사람임을 드러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실내는 겉모습에 비하면 파격이 덜하다. 언뜻 화려한 모습이 복잡해 보이기는 하지만 장비 구성이나 배치는 일반 승용차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사치스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내장재에서는 소형차 특유의 간결함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재치 있는 디자인과 스포티한 꾸밈새에서는 젊은 분위기가 물씬하다. 스티어링휠 뒤의 계기반 그리고 기어 레버를 감싸는 앞좌석 사이 센터터널 주변의 모터사이클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이 색다르다. 넉넉지 않은 공간과 좌석에서는 이 차가 확실히 소형차임을 느낄 수 있다. 그래도 앞좌석은 불편하지 않다. 높이가 적당한 좌석은 차에 오르내리기 편하고, 머리 위 공간도 그럭저럭 여유가 있다. 운전자세나 시야도 편하게 운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상위 트림(SV)인 시승차는 센터페시아 아래쪽에 통합제어시스템(I-CON)이라는 것이 달려 있어 주행 모드를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다. 조작부가 아래쪽에 있고 다루기가 조금 번거롭기는 하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기능을 익히느라 쩔쩔맨 경험이 있다면 그 정도 고생은 일도 아니다. 어쨌든 도구보다는 장난감으로 받아들이고, 시간을 들여 친해져야 하는 성격의 차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뒷좌석에 탄 식구나 다른 사람들을 신경 써야 하는 차라면 외면하게 될 기능이다. 쥬크의 뒷좌석은 있다는 사실 말고는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장비가 설득력이 있다. 바닥이 높고 공간 자체도 작아 짐을 많이 싣기 부담스러운 트렁크도 이 차에 탄 사람에게 말없이 이런 메시지를 던진다. “다른 거 생각할 필요 없어. 앞좌석에 앉은 사람들끼리 드라이브나 신나게 즐기면 돼.”

그렇다. 쥬크의 유별남은 시각적인 면보다 달리기에 더 강조되어 있다. 일단 이 정도 크기의 차에서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강력한 엔진이 가속의 즐거움을 일깨운다. 비슷한 크기의 다른 차들은 대부분 디젤 엔진이 쓰이는데, 쥬크에는 휘발유 터보 엔진이 올라간다. 평범한 소형차 수준을 뛰어넘는 출력(190마력)과 토크(24.5kg·m)도 예사롭지 않다. 흔한 표현으로 밟으면 훅훅 잘 나간다. 스포티한 주행감각과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CVT도 잘 다듬은 자동변속기처럼 매끄럽고 빠르게 액셀러레이터 조작에 반응하는 것이 기특하다. I-CON으로 에코, 스탠더드, 스포트 모드를 선택하며 차의 특성을 바꿔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에코 모드에서도 움직임이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역시 힘 좋은 엔진 덕분이다. 스포트 모드가 훨씬 더 박력 있게 느껴지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성능과 연비를 바꾼 탓에 에코 모드에서도 경제성에 놀랄 일은 없지만 작고 가벼운 만큼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힘 좋고 날래게 달린다고 해서 운전하기 까다로운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짧고 넓은 차체는 시종일관 경쾌하게 몸을 놀린다. 앞쪽은 스티어링휠을 돌리는 대로 정직하게 방향을 바꾸고 뒤쪽은 재빨리 앞쪽을 따라간다. 약간 부드럽게 조율된 서스펜션이 의도적으로 뒤뚱거리는 느낌을 빚어내지만 움직임 자체는 전혀 허술하거나 불안하지 않다. 웬만큼 거칠게 다뤄도 씰룩거리는 엉덩이를 다독여가며 달리면 마치 놀이기구에 탄 듯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나이 들어 정통 스포츠카를 사기에는 아무래도 좀 부담스럽지만, 운전하기 재미있으면서 불편하지 않은 차를 찾는다면 쥬크도 괜찮은 선택이다. 값도 썩 부담스럽지 않다. 현대 쏘나타를 새로 뽑을 값이면 충분하다. 모르긴 해도 쥬크를 처음 접한 50대라면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타온 차들 가운데 이렇게 경쾌한 운전의 재미를 준 건 거의 없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재미있는 경험, 비난받지 않을 일탈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아무리 지천명, 알 것 다 아는 나이라 해도 이 나라에 사는 한 남의 눈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쥬크는 확실히 튀는 차다. 다른 이들, 누구보다 가족의 시선을 걱정할 필요는 있다. 글•류청희(자동차 평론가)

 

 

쌍용 티볼리는 어떤 이의 꿈
봄여름가을겨울이 부른 ‘어떤 이의 꿈’이라는 노래가 있다. 꿈이 티볼리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상관이 많이 있다. 티볼리는 ‘내 생애 첫 SUV’라는 슬로건으로 젊은이들에게 (다분히 상투적이기는 하지만) 꿈과 희망을 주고자 한다. 그러면서 티볼리는 쌍용자동차가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한 회사의 꿈이기도 하다. 티볼리는 쌍용자동차가 젊은이들과 자기 스스로에게 꿈을 주고 또 함께 꾸자는 희망의 메시지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장밋빛만은 아니다. 불경기 취업난 속에 젊은이들은 스마트폰 할부금도 버겁고 연애보다는 가볍게 ‘썸’만 탄단다. 이런 와중에 내 생애 첫 자동차는 남의 말. 오히려 삶이 팍팍한 중년층이 중형차가 버거워지며 명분 있는 다운그레이드를 원하는 바로 그곳에 소형 SUV, 즉 B 세그먼트 SUV가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입맛은 쓰지만 만족이 있는 곳에 시장이 있는 법이니까.

티볼리의 사진이 처음 공개됐을 때 흐뭇했다.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은 독특한 디자인만으로도 존재감이 충만했으니까. 존재감. 이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자신 역시 존재감에 아쉬움이 있는 쌍용자동차는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어쩌면 거부감이 들 수 있는 디자인이 처음에는 뿌듯함으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나도 중년이구나.

가격에서도 티볼리는 아쉬운 형편을 잘 이해하고 있다. 수고를 마다치 않는 액티브한 이들을 위해 수동 변속기를 제공하는 유일한 모델이다. 가격도 경쟁자들보다 최소한 300만원 저렴한 1600만원대부터 시작하고, 운전석 파워 시트와 통풍 시트, 4좌석+운전대 열선, HID 등등의 엄청난 옵션이 장착된 최상급 LX도 QM3 기본형보다 싼 2200만원대면 충분하다. 요컨대 존재감과 가격대비 가치에서 티볼리는 적수가 없다.

꿈동이 티볼리를 만난다. 어쩌면 나도 동참할지 모르는 청년의 마음을 얻고 싶은 중년의 꿈동이인 티볼리. 그런데 얼굴이 한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일자 눈썹의 헤드라이트보다 삐딱하게 기울어진 사각형 안개등, 아니 그 주변의 번쩍이는 크롬 가니시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이에 더해 선홍색 차체와 은색의 앞범퍼 스키드 패드와 뒷범퍼 디퓨저, 블랙 휠, 그리고 탄소섬유 사이드미러 하우징 등 다양한 색깔과 복잡한 선들이 현란하다. 그리고 좌우 옆유리 아래의 벨트라인과 앞유리 아래 보닛 끝단을 관통하는 크롬 몰딩은 쌍용차의 주인이 인도 회사임을 일깨운다. 인도 시장에서는 ABS는 없어도 크롬 몰딩이 없으면 차를 팔기가 어렵다.

인테리어도 현란하다. 블랙-레드 투톤 인테리어는 선택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은색 송풍구와 하이글로시 블랙의 센터페시아, 선홍색 비상등, 자주색 투광식 센터페시아 스위치, 그리고 샴페인 골드의 파워윈도와 시트 열선 스위치 등 색깔이 너무 많다.

시동을 건다. 아주 조용하고 부드럽다. 요즘 유행하는 디젤이나 가솔린 직분사도 아닌, 단순한 1.6리터 자연흡기 MPI 엔진이다. 하지만 가속페달을 살짝 밟다가 ‘우왕~’소리를 내며 치솟는 엔진의 회전수에 깜짝 놀랐다. 부드러운 출발은 쉽지 않고, 반대로 가속페달을 놓았을 때의 반응은 한 박자 늦어서 생각보다 더 가속하다 놀란다. 처음에 과장된 가속페달 반응은 더 밟아도 출력이 별로 늘어나지 않는다는 뜻과 같다. 하지만 아이신 6단 변속기는 엔진의 출력을 최대한 사용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한다. 좋다.

강성이 뛰어난 차체는 이전의 쌍용차와는 달리 우수한 실내 마무리와 함께 잡소리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매우 우수한 주행 안정성의 원천이다. 하지만 여기도 너무 단단한 서스펜션이 아쉽다. 특히 앞 서스펜션이 딱딱하다 보니 코너 진입시 언더스티어를 보인다. 조금만 기다리면 강성이 좋은 차체가 주는 안정된 코너링을 맛볼 수 있지만, 운전자가 놀라서 운전대를 더 안쪽으로 돌리면 언더스티어만 커진다. 굳이 이렇게 단단하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티볼리는 보기에는 소형 SUV이지만 이것은 착시 현상이다. 막상 트랙스 옆에 세워보면 10센티미터 이상 낮아서 조금 큰 해치백의 비율이다. 굳이 서스펜션을 딱딱하게 하지 않아도 하드웨어에서 주행 안정성에 이미 강점이 있는 차라는 뜻.

티볼리는 기본기가 아주 좋은 차다. 하지만 과장된 화장, 지나친 설정, 과도한 딱딱함으로 금세 질리게 한다. 그 마음은 이해한다. 꿈을 확실히 주고 싶었고, 자기의 꿈도 붙잡고 싶었으니까 너무 잘하려고 했던 거다. 그러다 보니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에게도 초조하지 말라고 우리는 조언한다. 중년들에게도 자신감을 가지라고 어깨를 두드린다. 그렇다면 좀 더 자연스럽게 다가가도 좋지 않을까? 티볼리. 너는 잘할 수 있어. 너는 꿈동이잖아.

어떤 이는 꿈을 간직하고 살고, 어떤이는 꿈을 나눠주고 살며, 다른 이는 꿈을 이루려고 사네. 글•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