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사이징과 연비가 중요시되는 요즘의 기준으로는 대배기량 엔진, 무지막지한 파워를 내는 머슬카가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꾸준히 옛것의 매력을 찾아내는 법이다. 포드 머스탱, 쉐보레 카마로, 닷지 챌린저 SRT 헬캣 등 미국에선 머슬카가 줄줄이 부활하고 있다. 흔히 머슬카의 기준은 V8 엔진을 얹은 미국차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의 기준은 더 엄격하다. 미국에선 고성능 버전만을 머슬카로 인정한다. 차체 크기는 너무 커도 안 되며, 값이 너무 비싸도 안 된다. 1972년형 크라이슬러 차저 R/T E49, 1970년형 보스 302 머스탱, 1970년형 머큐리 쿠거 엘리미네이터 등이 동시대를 함께한 미국의 대표 머슬카다.

크라이슬러 차저 R/T E49는 머슬카 세계에서 조금 특이한 차다. 미국 브랜드가 만들었지만, 호주에서 선보였다. 호주에서 팔리던 크라이슬러 발리안트 세단을 쿠페형으로 만든 차이기 때문에 ‘발리안트 차저’라고도 부른다. 엄밀히 보면 미국의 닷지 차저와도 다른 차다. 그래서 차저 중에서도 R/T E49는 더 특별하다. 출력이 300마력을 넘은 기념비적 모델이기도 했다. 이 차에 장착된 엔진은 V6 4.3리터다. V8 엔진이 기본인 머슬카의 기준으론 적합하지 않지만 엔진 무게가 가벼워 오히려 V8보다 빨랐다. 덕분에 1972년 호주의 유명한 배서스트 500마일 투어링카 레이스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엔 세계 어디에도 무게 1300킬로그램에 V6 엔진으로 300마력을 발휘하는 차는 없었다(1975년 포르쉐 911 터보가 나오고 나서야 이 기록이 깨졌다). 이런 특별함이 E49를 머슬카로 인정받게 했다. 이 차는 외모 면에서 머슬카의 공식을 잘 따랐다. 검정 그릴의 가운데 빨간색 가로줄을 입혔고, 앞바퀴 뒤로 검정 스트라이프가 수직으로 라인으로 칠해졌다. 도어부터 차를 가로지르는 검은색 캐릭터 라인이 리어 스포일러를 감쌌다. E49는 단 149대만 만들어졌다. 그래서 지금도 수집가들 사이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보스 302 머스탱의 기본형인 포드 머스탱은 사실 머슬카로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트랜스앰 레이스를 위해 태어난 보스 302 머스탱은 달랐다(보스 302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은 것은 2012년 포드가 머스탱 보스 302를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나온 머스탱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당시 머스탱은 성능 면에서 카마로에게 큰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포드는 고성능 이미지를 부여하고자 보스 302를 기획했다. 보스 302의 엔진은 V8 4.9리터 유닛으로 290마력, 40.1kg·m를 발휘했다. 사실 이 엔진은 포드가 트랜스앰 레이스에 참가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당시 양산차에 쓰기엔 어려운 단조 부품이 대거 사용됐다. ‘보스’란 이름에 얽힌 일화도 재밌다. 당시 이 차는 포드의 CEO인 벙키 커드슨의 이름을 붙이려고 했다. 그러나 ‘셸비’처럼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촌스럽다고 느낀 관계자들이 그냥 보스(말 그대로 상사)라 이름 붙였다고 전해진다.
 

한편 현재 사라진 브랜드 머큐리는 포드의 고급 디비전 브랜드였다. 그런 이유로 머큐리 쿠거는 머스탱의 섀시로 만들어졌다. 그중에서도 엘리미네이터는 보스 302 엔진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엘리미네이터는 1969년 선보인 쿠거의 최고성능 모델이다. 일반 쿠거와 다르게 스포츠 서스펜션과 리어 스포일러, 보디 키트를 추가해 특별함을 더했다. 엔진의 라인업은 다양했다. 1970년형 모델만 살펴보면 V8 5.7리터 300마력의 클리블랜드 엔진을 기본으로 보스 302, 428 코브라 제트 등이 있었다. 엔진에 따라 서스펜션도 세심하게 세팅했다. 독립식 볼 조인트와 코일 스프링 등 당시로서는 앞선 기술들이 대거 사용됐다. 총 2267대를 만든 엘리미네이터는 1970년을 끝으로 단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