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겐 라센은 1943년부터 꾸준히 프레임(Frame)에 대한 구상을 했다. 넉넉한 공간 활용을 위해 디자인한 네모 난 박스는 큐빅 형태로 완성되었다. 여러 개를 연결할 수도 있고, 벽에 걸 수도 있으며, 그냥 세워둘 수도 있다. 

ML33 체어는 원래 프리츠 한센을 위해 모겐 라센이 디자인한 제품으로, 오리지널 제품 중 하나는 덴마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고백하자면, 북유럽 디자인이 조금 지루해졌다. 몇 가지 전형적인 북유럽 스타일 특징이 브랜드에 상관없이 반복적으로 보인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다. 어떤 특정 연예인의 이미지가 한없이 소비되고 나면 관심이 줄어드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이 와중에 북유럽 디자인 특유의 편안함과 모던함, 고전미가 공존하는 브랜드 하나를 발견했다. 덴마크 디자인 브랜드 ‘바이 라센(By Lassen)’이다.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기능과 디자인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제품은 곧은 선과 마냥 부드럽기만 하지 않은 곡선미가 모던했고, 새로웠다. 

바이 라센은 덴마크의 저명한 건축가 둘의 디자인으로 시작됐다. 모겐 라센(Mogens Lassen)과 플레밍 라센(Flemming Lassen) 형제가 그 주역이다. 화가인 어머니와 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그들은 아이코닉한 건축물과 독특한 디자인 제품을 선보이며, 대니시 모던 스타일의 선구자라는 평을 받았다. 건축을 기반으로 한 디자이너의 감각은 인테리어 소품에도 고스란히 옮겨졌다. “장인의 손으로 빚은 물건은 그 가치가 분명히 있다”고 말한 라센 형제는 좋은 디자인은 기능적이고 미학적일 뿐 아니라 품질도 갖춰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했다. 그들의 감성과 철학으로 완성된 디자인은 유산으로서 바이 라센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현재 바이 라센은 모겐 라센의 손자, 손녀 소렌 라센과 나디아 라센이 운영한다. “거장 디자이너로 불리는 모겐 라센과 플레밍 라센의 디자인을 유산으로 이어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인데, 그 디자인을 현재에도 계속 전 세계에 걸쳐 소개할 수 있다니 이만한 기쁨이 또 있을까요.” 나디아 라센은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가 제품을 또는 디자인을 창조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말을 이었다. “바이 라센은 가족 사업이에요. 우리는 라센 형제의 디자인 유산을 전하고 기리는 데에 큰 힘을 쏟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디자인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기술적으로 디자인적으로도 고민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리지널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방법은 당시 디자이너의 마음을 최대한 헤아리며 그만큼의 애정을 담아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죠.” 모겐 라센의 대표작이자 바이 라센의 대표 제품으로 꼽히는 쿠부스(Kubus) 촛대는 운으로 완성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촛대의 디자인을 결정하는 비율은 건축 설계를 하듯 정밀한 계산 아래 정확하게 디자인되었다. 쿠부스 촛대는 그 품질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숙련공의 손을 반드시 거친다. 그뿐 아니라 바이 라센 제품 대부분은 덴마크 홀스테브로에 있는 공장에서 제조해 완성도를 높인다. 과거의 디자인을 지금의 기술로 생산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면, 명백한 오산. 소렌 라센은 쿠부스 촛대를 20여 년 동안 그의 가족이 써온 작업실에서 생산하려고 했다. “생산을 시작하면서 생산 과정에 정확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죠. 그래서 모겐 라센의 디자인 그대로를 구현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하나 그의 디자인을 온전히 구현했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그가 그 디자인을 처음 완성했을 때의 기쁨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웃음)” 현재 바이 라센의 디자인은 모겐 라센과 플레밍 라센의 디자인뿐 아니라 라센 형제의 디자인 철학을 유지한 채, 바이 라센 소속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하는 제품도 함께 선보인다. 종종 오리지널 디자인에서 수종(樹種)이나 패브릭의 종류 등 소재를 달리하기도 하고, 오리지널 디자인에 대한 해석이 불확실할 때 현재 디자이너의 감각으로 보완해 디자인을 완성한다. 바이 라센의 제품은 기능성과 디자인의 연결에 탁월한 감각을 발휘한다. 특히 스트롭(Stropp)은 후크지만, 가죽과 메탈 디테일이 주는 감성은 여느 것과 다르다. “미니멀함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자연스러움이 있어요. 그 느낌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소재와 섬세하고 완성도 있는 디테일이 뒷받침되어야 하죠. 그 때문에 바이 라센의 제품은 여러 소재와 컬러 연구도 하고 있습니다.” 라센 형제, 아르네 야콥슨, 한스 J. 베그너 등 유독 훌륭한 디자이너는 덴마크 출신인 경우가 많다. 이들이 그 나라 문화에 따라 ‘디자인 환경’ 속에서 성장한 이유도 있겠지만, 디자이너와 아티스트의 영역에서 서로 간에 영감의 원천이 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들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 가치를 기리고, 한층 발전시키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다.

스트롭(Stropp)은 디테일에서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일상에 아름다움을 주기 위해 디자인한 이 후크는 어떤 공간이든 구애받지 않고 어우러질 힘을 지녔다. 부엌에서는 티타월을 걸기에 좋고, 거실에서는 잡지나 신문을 말아 가죽 고리 안에 넣고 보관할 수도 있다. 

1 아이코닉한 쿠부스(Kubus) 촛대는 1962년 모겐 라센의 작품으로, 디자인 전문가들과 건축가들은 이 작품을 ‘모던 디자인의 아이콘’이라고 평가했다. 두개의 초를 꽂아 사용할 수 있는 라인(Line)은 하나의 선이 주는 미니멀함과 건축적인 아름다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2 모겐 라센은 1955년에 삭스(Saxe) 폴딩 체어를 디자인했다. 오늘날 컨템퍼러리 디자인이라 하기에도 손색없는 60년 전의 디자인이다. 플레밍 라센이 디자인한 암체어 타이어드 맨(Tired Man)은 1935년에 완성됐다. 플레밍 라센의 말에 의하면, 이 의자는 ‘북극곰 새끼가 어미 품에 안겨 느끼는 아늑함과 안정감’을 구현하기 위해 디자인했다고. 큐브 형태의 사이드 테이블은 트윈(Twin). 식물을 심은 쿠부스 볼(Kubus Bowl)은 생활 방수가 가능해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