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사랑의 이야기 듬뿍 담은 편지’. 1978년 발매된 세샘트리오의 앨범에 수록된 곡 ‘나성에 가면’의 가사다. 심은경 주연의 <수상한 그녀>(2014)에 수록되면서 다시 인기를 얻었다. 이 노래 속의 나성은 바로 로스앤젤레스, LA를 일컫는 다른 말이다. 뉴욕 다음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미서부의 가장 큰 이 도시는 아름다운 해변과 할리우드, 그리고 꿈을 품고 있다.

1970~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나성으로 향한 한국인들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LA에 모이고, 예술과 문화, 할리우드의 중심에 살기를 원하는 미국 젊은이들 역시 LA로 찾아든다. <라라랜드>는 바로 이 도시, 사랑과 꿈이 넘쳐흐르는 LA에서 만난 두 남녀의 로맨스를 그린다. 배우 지망생인 미아(엠마 스톤 분)와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이 그 주인공이다.

LA가 아무리 꿈의 도시라 한들, 모든 꿈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미아는 툭하면 오디션에 떨어지고, 톱스타의 잔심부름이나 하고 카페에서 서빙을 하며 할리우드 언저리를 헤맨다. 세바스찬이라고 별다를 것은 없다. 작고 지저분한 바에서 연주하는 것이 수입의 전부인 세바스찬에게는 꿈도 사랑도 사치다. 비슷한 두 사람은 만나고, 서로에게서 닮은 점을 발견하고, 또 사랑에 빠진다. LA를 배경으로 쓸 수 있는 가장 빤한 스토리처럼 보이는 로맨스는, 음악과 조명 아래에 놓이자 반짝이며 빛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노래하고 춤출 때 LA는 그냥 배경이 아니라 무대가 된다.

<라라랜드>는 데뷔작인 <위플래쉬>(2014)로 단숨에 할리우드의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감독 반열에 오른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뮤지컬 영화다. 데뷔작으로 <라라랜드>를 오랜 시간 준비했지만 시나리오를 받아주는 데가 없어 소규모 자본으로 제작이 가능한 <위플래쉬>를 먼저 연출한 차젤레 감독은, 데뷔작으로 명성을 얻고 인정을 받은 뒤 바로 <라라랜드>의 이야기를 펼쳐놓기 시작했다. <위플래쉬>가 음악 영화이지만 스릴러와 같은 장르의 속성을 빌려와 음악과 결합한 작품이라면, <라라랜드>는 음악 영화 안에서도 할리우드가 가장 빛나던 시기 중 하나인 1940~50년대의 뮤지컬 영화 전통을 가져온 작품이다.

차젤레 감독은 <위플래쉬>에서 이미 합을 맞춘 저스틴 허위츠에게 음악을 맡겼고, 그 결과 전작 이상의 음악이 탄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여름 베니스 영화제에 첫 공개된 뒤 엠마 스톤이 여우주연상을 탔고, 아카데미 영화제로 가는 티켓처럼 여겨지는 토론토 영화제 관객상도 수상했다.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관객에게 첫 공개되었을 때도 예매 오픈 1분 만에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이 모든 기록도 <라라랜드>의 마법을 모두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많은 꿈이 수많은 이유로 인해 사그라든 시절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꿈을 꾼다. 모두가 내리막길에서 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밀려갈 때도 음악, 노래, 예술, 연기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잡기 위해 손을 뻗는 사람들이 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무용한 아름다움을 위해 시간과 마음을 쏟는다. 차젤레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건 바로 이것이다. LA가 상징하는 할리우드, 거대한 영화 산업 안에서 사람들은 때로 소품처럼 여겨지지만, 한사람 한사람을 들여다보면 그들에게는 각자의 꿈이 있다는 것. 한순간의 마법처럼 사라지더라도, 그 순간만으로도 가치 있는 꿈이. <라라랜드>는 사라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괜찮은 꿈과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편지처럼 크리스마스 즈음 도착할 예정이다. 어서 읽고 싶고, 보고 싶은 나성에서 보낸 편지다.

이 글을 쓴 윤이나는 영화 칼럼니스트이자 <미쓰윤의 알바일지>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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