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세계에는 슈퍼히어로가 산다. 그들은 외계의 이름 모를 힘으로부터 산산이 부서진 뉴욕을 구하고, 미국을 구하고, 세계를 구한다. 마블 시네마 유니버스(MCU) 이야기다. 할리우드의 마블 스튜디오는 코믹스를 기반으로 여러 슈퍼히어로가 중심이 되는 영화나 드라마까지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이야기를 펼친다. 슈퍼히어로 각각의 영화는 물론, <어벤져스> 시리즈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통해 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폭발력이 어마어마함을 증명한 지금, 바로 그 세계에 새로운 히어로가 등장한다. 바로 <닥터 스트레인지>의 주인공, 의사 출신의 슈퍼히어로다.

히어로 군단에는 과학자, 스파이, 군인, 심지어 외계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이 포진해 있지만 의사는 처음이다. 게다가 ‘닥터 스트레인지’는 마블 시네마 유니버스가 호그와트가 아님에도 마법을 사용한다. 초능력과 마법이 어떻게 다르냐고? 초능력이 말 그대로 인간의 범위를 초월한 능력이라면, 마법은 마법이다. 무엇이든 가능케 하며, 현실까지도 초월한다. 다른 히어로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 현실을 조작할 수도 있고, 유체 이탈과 차원 이동도 가능하다. 지구를 넘어 범우주적 능력이다. 마블과 함께 코믹스 기반 슈퍼히어로 월드를 양분하고 있는 DC를 불러오자면, 슈퍼맨 정도만 닥터 스트레인지의 능력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법이라고 했던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통해 히어로들 사이의 균열이 드러나고 조금 더 거대한 서사가 필요한 시점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닥터 스트레인지가 나타났다.

지구를 넘어 우주 대마법사인 닥터 스트레인지 역할을 맡은 배우는 바로 베네딕트 컴버배치다. 그를 이성과 과학의 대명사 ‘셜록’으로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낯선 변화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가 지금까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보여준 캐릭터와 아주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원래 천재 외과의사인데, 자동차 사고로 손에 큰 부상을 입으면서 삶의 의지를 잃은 인물이다. 현대 과학과 의학, 이성이 체화된 의사가 마법의 존재를 믿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랬던 그가 어떻게 마법의 존재를 인식하고 또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그 또 다른 기술을 어떻게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용하는지가 <닥터 스트레인지> 이야기의 핵심이다. 자신이 천재인 것을 아는 의사, 종종 오만하고 괴짜 소리도 듣는 의사 마법사라면 베네딕트 컴버배치보다 어울릴 배우를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코믹스와 가장 달라진 캐릭터이자 영화화의 열쇠가 될 인물은 바로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마법을 가르쳐주는 스승 에이션트 원이다. 원래 코믹스에서는 전형적인 노인 고수로 설정된 이 역할을 틸다 스윈턴이 맡았다. 그녀가 연기함으로써 에이션트 원은 나이와 성별이 불분명해졌고, 마법이라는 미지의 세계와 상상력의 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마블이 새로운 세계를 확장하는 시작점에 있는 작품이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무한에 가까운 마법 능력은 이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공간과 차원을 넘나드는 과정에서 컴퓨터 그래픽과 3D 효과는 관객들로 하여금 어디까지 영화를 ‘체험’하게 할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 할리우드에서는 여전히 다른 세계나 다름없다고 믿는 듯한 아시아의 관객들은 오리엔탈리즘의 혐의가 있는 이 작품의 고유한 특징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작품을 통해 꽤 많은 질문과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쓴 윤이나는 영화 칼럼니스트이자 <미쓰윤의 알바일지>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