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장 푸르베의 스탠더드 체어와 루돌프 스팅겔의 작품(Untitled, 2012)이다.

 

 

 

예전에 뮤직 살롱으로 쓰였던 공간은 이 집의 거실이 되었다. 엄마 세실리아와 빅토르, 막내 에밀-밀로는 고풍스러운 공간 안에서 모던아트 피스와 함께 일상을 즐기고 있다.

 

“대부분의 가족이 그렇겠지만 아이 네 명을 둔 집이라면 아침 시간이 전쟁터 같다는 데 공감할 거예요.” 이제 네 살이 된 막내는 오늘도 식탁 위에 장난감을 늘어놓더니 우유를 쏟았고, 큰아이는 학교에 늦겠다며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아빠와 집을 나섰다. 아직 출근 준비는 꿈도 못 꾸는 엄마는 초토화된 식탁을 정리하느라 분주하고, 막내는 다시 축구공을 굴리며 온 집 안을 뛰어다닌다. 여느 집과 비슷한 소란이 펼쳐지는 공간, 그러나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풍경이 예사롭지 않을 테다. 그도 그럴 것이 막내가 우유를 쏟은 원목 식탁은 가구 디자인 역사에 손꼽히는 디자이너 중 하나인 샤를로트 페리앙이 가구 디자이너로서 처음 만든 테이블로 하나밖에 없는 에디션이기 때문이다. 가구 전문가의 이야기를 따르자면, 이처럼 가치 있는 컬렉션은 실제 공간에 두고 보는 것만으로도 애지중지 모실 수밖에 없을 거라고. 하지만 이 집에서 식탁은 그저 식탁일 뿐이다.
“저희 부부는 아트 컬렉터이자 디자이너로서 삶의 전반에 ‘로큰롤’ 어법을 대입하고 있어요. 현실을 인정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이죠.”
티에리 질리에와 세실리아 본스트롬 부부는 쿨하면서도 여성적 매력을 잃지 않는 ‘록 시크’ 스타일을 표방하며, 새로운 프렌치 감성을 이끌어낸 패션 브랜드 쟈딕&볼테르의 설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캐시미어, 실크, 리넨과 같은 순수한 소재를 거친 듯한 록 시크 스타일에 접목하며, 대비의 미학을 통해 확실한 개성을 선사한 그들은 인테리어에서도 감성과 철학이 남다르다.
“이 집에 있는 가구와 소품, 작품 모두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에요.” 세실리아가 명확하게 말한다. “모두 아름답고 실용적이죠. 그리고 샤를로트 페리앙의 테이블은 여러모로 제게 다양한 생각과 추억을 떠올려줍니다. 심플한 형태와 볼륨, 솔리드 애시우드 소재 등 그 자체로 매우 순수하죠. 이는 제가 어릴 때 보던 스웨덴 테이블의 특성과 무척 닮았어요. 저희 부부는 단순하고 순수한 걸 좋아합니다.” 스웨덴 출신으로 24년 전 파리에 정착한 세실리아지만, 간결하고 실용적인 북유럽 디자인 DNA는 변함없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 부부는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수집해요. 물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데,  지향점은 늘 같답니다. 예술 작품은 우리 가족의 생활 속에서 유용하게 활용되어야 한다는 거죠.” 세실리아의 남편 티에리는 미국에서 예술을 전공한 뒤 아트 컬렉션에 눈을 떴다. “제게 자극을 주고 영감을 선사하는 컨템퍼러리 모던 아트를 주로 컬렉팅했습니다. 이런 작품은 오래된 친구처럼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답니다.” 컬렉션 중 그림은 부부의 느낌과 필요에 따라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가며 전시되기 일쑤다. “우리는 가능한 한 잘 어울리는 자리에 그림과 오브제를 두려고 해요.” 그림은 벽에 걸기도 하지만, 그냥 벽에 기대어놓기도 한다. “특별한 이유요? 그림을 비교적 쉽게 바꿔놓을 수도 있고, 색다른 분위기도 선사하죠. 우리 집에서 예술품은 그냥 일상이에요.” 세실리아의 대답은 진짜 쿨했다. 고풍스러운 프레스코가 실내에 걸려 있거나 창가 턱에 비스듬히 세워놓은 그림은 장 미셸 바스키아, 데이미언 허스트, 우르스 피셔 등 쟁쟁한 아티스트의 작품이고, 이들은 어느 하나 표구한 것 없이 오리지널의 색감과 촉감을 생생히 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온 가족이 함께 마주할 때는 바로 이 식탁에서다. 부드러운 곡선, 자유로운 형태의 애시 원목 테이블은 가구 디자이너 샤를로트 페리앙이 1960년대에 만든 것, 의자는 조지 나카시마의 1940년대 작품이다.

 

 

 

기둥을 덮고 있던 장식 마감을 제거한 결과 건물을 지지하는 기둥이 고풍스러운 색감과 자태를 드러냈다. / 좁은 계단 공간에도 그림을 걸어두었다. 흰색 캔버스에 원 하나를 그려넣은 작품은 스위스 화가 올리비에 모세의 1973년 작품. 오른쪽 블랙 컬러 그림은 리처드 세라의 작품이다.

 

 

 

부부 침실에 걸린 큰 그림은 크리스토퍼 울(Christopher Wool)이 그린 추상화(Untitled, 2006)다. / 첫째와 둘째 아이가 함께 쓰는 침실. 소녀 실버 조각상은 자비에 베양(Xavier Veillant), 오른쪽 벽면의 그림은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 작가 작품. 보라색 암 체어는 가구 디자이너 피에르 폴린(Pierre Paulin)의 튤립 체어(1965)다.

 

 

 

막내 방은 벽난로와 천장 몰딩이 모두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미키마우스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은 노르웨이 출신 아티스트 가르다르 에이데 에이나르손 작품.

 

 

 

이탈리아 빈티지 서랍장을 들여놓은 욕실.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표현이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 <Death in America #2>(2005)는 화가 스티븐 패리노(Steven Parrino)가 그린 것이다. 플로어 램프는 부훌렉 형제가 디자인한 ‘벨 램프’, 1950년대 빈티지 암체어 옆에 놓인 스툴은 앤티크 숍에서 구한 것이다. / 옛 창문 프레임 장식은 그대로 살렸고, 고급 대리석 욕조와 오크 마루로 귀족적인 느낌을 더했다.

 

티에리와 세실리아는 컨템퍼러리 아트에 본능적으로 끌린다고 말했다. 현재 이들이 살고 있는 집은 19세기 말 나폴레옹 3세가 파리의 근대화를 위해 발탁한 건축가 오스만 남작이 소유했던 아파트로, 그가 게스트하우스로 쓰던 곳이다. “제가 파리에 정착하고 아무것도 모르던 때, 한눈에 반한 곳이 이 집이에요. 테라스와 창문을 교묘히 둘러싼 등나무 덕분에 한층 생기 있고 아름답게 보이는 오스만 양식의 건축은 제게 기이한 감흥을 선사했죠. 그런 한편으로 ‘도대체 이렇게 멋진 집에 누가 살고 있는 걸까?’ 의문과 의지가 생기더군요.” 인연이 있었던 건지, 정말 이곳에 보금자리를 꾸리게 된 세실리아는 이 집의 실내를 접하면서 한층 애정을 갖게 되었다. 바로크 양식으로 꾸민 고풍스러운 실내는 건축 당시와 같이 잘 보존되어 있고, 천사가 그려진 프레스코화와 금빛으로 물든 천장이 인상적인 공간은 뮤직 살롱으로 쓰였다.
“저는 이 집이 갖고 있는 ‘마스터피스’의 힘을 확신했어요. 변함없는 절대미가 지닌 여유, 그 안에 우리 부부가 모은 컨템퍼러리 아트워크를 접목하면 일종의 자유로운 감성이 깃든 로프트에 사는 것과 같은 일상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테리어 작업은 남편과 전 세계 쟈딕&볼테르 매장 디자인을 담당하는 건축가 이자벨 스타니슬라와의 협업으로 진행되었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만큼 티에리가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한 이자벨은 ‘현대적 아트워크가 화려한 클래식과 공존하는’ 접점을 찾는 데 집중했다. “결론적으로 필요한 것은 빛이었어요. 옛 모습을 보존하면서 탁 트인 모던한 실내를 만드는 것.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벽을 없애고, 또 칙칙한 나무로 마감한 벽 일부는 흰색으로 칠했어요. 천장의 프레스코화는 전문가들이 잘 닦아준 것 외에 손댄 것이 없습니다.” 최소한의 작업을 통해 원형을 지키고, 모던함을 표현한 인테리어는 이들의 정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독특한 개성을 담보했다. “쟈딕&볼테르의 특징 중 하나는 문화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옛것과 새것의 충돌과 대비, 남성과 여성 사이의 모순과 반대되는 성향과 그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을 사랑하고 조화롭게 하기 위해 노력하죠. 이것은 저희의 삶의 방식이에요.”
예술을 사랑하는 티에리와 세실리아가 집을 완성한 뒤 도전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아이들의 침실부터 욕실까지 아트워크가 살림처럼 놓여 있고 건축물 자체가 곧 역사인 집에서 살고 있는 가족이 그린 그림을 현 상태의 집 안에 매치하는 것. “아직 막내는 크레용보다는 축구공을 더 좋아하죠. 하지만 15세, 13세인 큰 아이들은 일상에서 접한 예술품을 통해 자신의 감성을 발견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개성의 가치를 깨닫고 있으니,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요?”  

 

 

 

거실 창문과 창문 사이에 걸린 튜브와 맨홀 뚜껑을 표현한 오브제 <Lifesaver Manhole>(2011)은 아티스트  알로라& 칼자딜라(Allora et Calzadilla) 작품. 암체어는 필리프 아르크탄데르(Philip Arctander)의 제품이다. / 이 아파트가 지어질 당시의 몰딩 장식이 보존된 현관 입구에서 보이는 메인 리빙룸. 거실 진입부에 놓인 의자와 장식장 등은 모두 부부가 모은 빈티지 컬렉션이다. / 패션 브랜드 쟈딕&볼테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세실리아 본스트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