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는 몸 

‘인간이 진정으로 겁을 먹는 건 오로지 자기 몸에 관해서뿐이다.’ 

저자가 평생 몸에 관심을 기울이고 일기를 쓴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전쟁 후유증으로 인해 지독히 쇠약한 상태였다. 가끔씩 속삭이는 정도로만 자신을 증거할 수 있는 반송장이었다. 그는 아버지 곁에서 육체를 희미하게 하고 유령처럼 살아가는 법부터 배웠다. 보이스카우트 캠프에서 또래들에게 결박당해 수모를 당할 때 더욱 절박하게 느꼈을 것이다. 육체가 존재하기에 이런 고통이 가능하다. 네 시간마다 코피를 쏟아내야 하는 병, 평생 친구로 삼아야 하는 이명(耳鳴)과 같은 것들이 뒤이어 찾아온다. 몸은 끝없이 염려를 부른다. 그러니 몸을 관찰해야 한다.

그렇다고 그가 평생 수도사처럼 금욕 속에 살았다는 건 아니다. 그는 몸의 기쁨도 열렬히 기록했다. 발가벗고 밀알 더미 속으로 뛰어내리기, 비올레트 아주머니의 품에서 냄새 맡기, 모나와 하룻밤 여섯 번 섹스하기, 부잣집 도련님들을 테니스로 혼쭐 빠지게 하기. 그러나 몸의 즐거움은 간헐적이다. 지속적이고 강렬한 경험은 고통이다. 육체가 소멸해간다는 불안감만큼 생을 증명하는 건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연이은 죽음을 통해 그는 몸의 가장 중요한 속성을 깨닫는다. 다행히 그는 일찍부터 몸을 실험했고, 덕분에 몸을 다루는 법을 깨우쳤다. <라루스 사전>의 인체해부도를 전범으로 삼아 근육을 단련하기도 했다. 반대로 기숙사 학교에 보내달라는 무모한 단식으로 그 모든 근육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추시계의 똑딱 소리를 들으며 전해주던 ‘작은 철학 강의’가 있었다. 그 철학 덕분에 그는 자신이 절대 다룰 수 없는 그 몸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지혜다.

손자 그레구아르는 아픈 할아버지를 걱정해서 의사가 된다. 그가 만들어낸 ‘건강염려증 환자놀이’는 이러한 몸의 아이러니를 축약한다. 

이 게임은 한칸 한칸 나아갈수록 병이 더 심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칸에 이르면 마침내 병에 대한 공포를 완전히 치료한다. 그래, 죽음이다. 모두에게 공평한 결말이다.

*이 글을 쓴 이명석은 문화 칼럼니스트이다.

기쁜 몸

우리가 태어났을 때,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면 이런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기쁘다, 몸이 오셨네.” 만나는 몸, 쾌락을 느끼는 몸, 확인하는 몸, 내 몸으로 기쁨을 느끼고, 남의 몸 덕분에 기쁘다. 몸이 없었다면 스쳐 지나갔을 사람들이 서로의 요철을 확인하고 결합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이, 한 사회 전체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어떻게 기쁘기만 할까. 몸은 고통을 받아들이고 간직하고 재생한다. 쾌락은 희미한 죄책감을 품고, 고통에 안도감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사람들은 일부러, 혹은 무의식중에 몸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을 몸의 탓으로 돌리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을 통제하려고 한다. 짐짓 몸에 대한 관심을 거둔다. 그곳에 없다는 듯이. 그곳에 깃든 적도 없다는 듯이. 이 책, 다니엘 페나크의 <몸의 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몸의 이야기로 일관한다. 어떤 부분에는 공감하고 어떤 부분은 신기해한다. 사람들이 자기 몸보다 더 모르는 것이 있다면 남의 몸이리라. 이 책의 주인공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는 “만약 이 일기를 공개해야 한다면, 우선은 여자들에게 바치고 싶다. 그 대신 나도 여자들이 자기 몸에 관해 쓴 일기를 읽어보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의 일기에는 아이와 손자를 얻은 기쁨은 보이지만, 부인의 임신에 대한 묘사는 한 줄도 없다. 그는 당혹해하며 말한다. “임신이야말로 몸과 관련된 일인데! 그런데 없어. 아주 작은 암시도 없어. 브뤼노와 네가 단위생식으로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더 한심한 건, 아무리 돌이켜봐도 네 엄마의 두 차례 임신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는 거야.” 그러나 그는 부인을 처음 만났을 때의 풍경, 황홀한 섹스의 기억은 온전히 간직하고 상세히 묘사한다. 그렇다. 사람은 자신의 몸에 새겨진 것만 이야기할 수 있다. 그의 부인 모나라면 어떤 ‘몸의 일기’를 쓸까. 그는 아이들을 씻기면서 그 단단한 몸에 놀라 말한다. “인간은 극사실주의 속에서 태어나 점점 더 느슨해져서 아주 대략적인 점묘법으로 끝나 결국엔 추상의 먼지로 날아가버린다.” 점점 헐거워지는 몸. 서서히 해체되는 몸. 그러나 각 단계의 몸은 나름대로의 기쁨을 가진다. 한결같은 눈을 가진다면 누구나 발견할 수 있으리라. 이 일기를 읽고 나니, 내 몸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사금을 캐내듯 기쁨의 순간을 캐고 싶어진다.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