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중심가에 위치한 이 집은 1914년에 건축된 7층짜리 고풍스러운 건물 맨 위 2개 층에 자리하고 있다. 루프톱은 데크를 설치해 정원으로 꾸몄다. 바로 옆 건물의 돔 지붕은 이 루프톱 정원의 전망을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준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모던 로프트 스타일로 재탄생한 리빙 룸. 원래 창고였던 공간을 박공지붕 모양을 살려 모던한 로프트 스타일로 연출했다. 유리문 옆으로 아래층과 이어지는 계단이 있다.

눈부신 햇살이 아름다운 주말, 마드리드 시내 중심가에 사는 소피(Sophie)의 가족은 각자 책과 음료 등 필요한 것을 챙겨 들고 위층으로 올라간다. 박공지붕 아래 펼쳐진 로프트 스타일의 거실을 관통해 당도한 곳은 자쿠지가 있는 루프톱 가든. 한쪽으로는 푸른 대나무가 일렬로 늘어서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종교 건축 미학의 정수인 돔 지붕이 보이는 전망, 가족은 따스하고 평화로운 이곳에서 각자의 자리를 찾아 여유로운 한때를 만끽한다.
 

“저는 우리 가족이 여기서 살게 되리라는 걸 직감했어요. 집으로서는 형편없는 조건이었지만, 이 돔 지붕을 필두로 펼쳐지는 마드리드의 전망은 우리가 왜 이곳에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려줬거든요.” 남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스페인으로 이주한 소피&찰스 부부. 두 딸과 함께 네 식구가 살기 위해 찾은 집은 1914년에 스페인 건축가 빈센테 아구스티 엘게로(Vicente Agusti Elguero)가 지은 건물로, 마드리드 중심부에 있는 건축물치고는 비교적 모던한 아파트에 해당한다. “5층까지는 상업 및 오피스 공간이고 6층이 주거 공간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내부는 모두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더군요.” 마드리드 시내에 있는 아파트가 대개 그렇듯 이곳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 복도를 따라 방이 늘어서 있고, 거실과 주방 역시 각각 구분된 구조였다. 천장의 석고 몰딩 장식도 그대로였다. “개조를 해도 네 식구가 지내기에 빠듯할 수도 있는지라 좀 더 큰 곳을 알아보려 했는데, 마침 위층이 비어 있다기에 올라가봤죠.” 위층은 건물의 7층에 해당하는 곳으로, 박공지붕 형태가 반영된 낮은 천장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다락방’이었다. 다락방 외부로 향한 문을 열면 마드리드의 마천루가 펼쳐지는 테라스와 이어지니 이 얼마나 환상적인가. 부부는 주저 없이 집을 구입하고, 그들의 개성이 담긴 보금자리를 꾸밀 계획에 돌입했다.  “아래층은 어떻게 개조하든 저희 관심 밖이었어요. 우리는 그저 다락방과 루프톱을 어떻게 개조하면 좋을까, 이 점에만 집중했답니다.” 부부에게 떠오른 해결책은 건축사무소 베스피 드 뫼롱 로메오였다. 스위스,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마르쿠스 베스피(Markus Wespi), 제롬 드 뫼롱(Jerome de Meuron), 루카 로메오(Luca Romeo)가 함께 운영하는 이 건축사무소는 돌과 콘크리트 등을 활용해 덩어리감이 돋보이는 개성 있는 주택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유럽에서 명성을 높여가는 회사다. “베스피 드 뫼롱 로메오는 저희와 함께 일해본 적이 있죠. 우리 가족이 한때 이탈리아의 오래된 농가 주택을 개조해 살았는데 그때 리모델링을 맡았어요. 당시 집 또한 오래된 농가여서 창문도 작고 좁고 답답한 구조였는데, 이 다락방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딱 그곳과 닮았더군요.” 소피와 찰스 부부의 요청에 주저 없이 달려와준 마르쿠스와 제롬 역시 이 집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천장에 누수가 있었던 것과 다락방의 창문이 작은 것 외에 큰 문제가 없는 아파트. 건축가들은 오래된 몰딩 장식과 박공지붕 구조에서 충분히 영감을 얻었고, 역발상을 통해 흥미로운 공간 구성을 제안했다.

주방에서 바라본 거실. 루프톱 정원으로 통하는 문 바로 옆에 자리한 거실은 부드러운 베이지, 우드 톤 가구로 연출해 편안하고 내추럴한 분위기로 완성했다. 소파는 피에로 리소니가 디자인한 ‘네오월(NeoWall)’ 소파로 리빙디바니 제품, 우드 암체어 한 쌍은 브라질 건축가 세르지우 호드리게스(Sergio Rodrigues)가 디자인한 ‘디즈’(Diz), 카펫은 모로코 쿨치(Kulchi) 제품이다. 바닥과 벽에 기대놓은 블랙&화이트 페인팅 작품은 브라질 작가 아우바 밀리오니(Alba Milioni) 작품이다.

“아래층은 한 곳만 벽을 허물어서 서재와 오디오 룸 등 가족이 함께 사용할 공용 공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천장의 몰딩을 훼손할 염려도 없고요. 그리고 위층 다락방을 오픈 스페이스로 개조해 전망이 돋보이는 모던 로프트 스타일로 꾸미기로 했습니다.” 건축가 제롬의 그림은 아래층은 건축 당시의 옛 정취를 보존하되 위층은 박공지붕의 구조를 살려 모던한 로프트처럼 새롭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부부 역시 적극 찬성했고,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의외의 곳에 있었어요. 저희나 건축가 모두 스페인이 처음인지라 이곳의 건축법을 디테일하게 살피지 못했습니다.” 소피가 말하길, 마드리드에선 건축 개조 때 창문은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 내벽을 허무는 것은 상관없지만 외벽에 변형을 주는 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건축가 마르쿠스와 제롬은 규정을 참고해 대안을 마련했고, 이로써 차별화된 로프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우리는 들쭉날쭉한 벽면과 천장의 기울기에 집중했습니다. 흔히 박공지붕이라 하면 두 변이 같은 경사를 이루며 균형 잡힌 삼각형 형태를 이룬다 생각하지만, 이곳은 아주 특별한 케이스예요. 어느 면은 천장에서 바닥까지 경사가 쭉 이어지고, 어떤 곳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경사면이 벽면 중간에서 만나는 등 제각각이었죠.” 이쪽 천장이 높으면 반대쪽은 머리가 닿을 만큼 천장이 낮았다. 미로처럼 비정형으로 생긴 위층 공간 곳곳이 불규칙적으로 이어지는 구조. 창문 크기와 형태도 다 다르고, 심지어 위치도 중구난방이다. 제롬은 거실과 주방 위치를 설정하고, 이 두 영역이 각각 집 모양 형태의 독립된 공간 안에 자리하도록 계획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천장 지붕 라인과 벽면의 접촉면을 대칭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는데, 이때 일종의 3차원 입체 형상 디자인을 적용했다. “예를 들어 양쪽의 천장이 뾰족 지붕 모양으로 대칭을 이루려면 어느 한쪽은 천장도 더 내려오고 벽감도 더 튀어나와야 합니다. 이는 가벽을 만들어 해결하는데, 이렇게 하면 실제 공간은 좁아지게 마련이죠. 하지만 원래 벽과 가벽 사이에 벽감을 내어 붙박이장을 만들거나 오픈형 선반을 만들면 별도로 수납 가구를 놓지 않아도 되니 생활하기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죠.” 주방은 건축가 제롬이 목표한 바가 이상적으로 표현된 곳이다. 가벽으로 균일하게 만든 벽면 내부는 오픈형 수납공간 및 붙박이장으로 구성했고, 여기에 그릇과 가전제품 등 살림을 깔끔히 정리해둔 것. “식탁도 건축가가 공간에 꼭 맞게 제작했어요. 한쪽 다리가 없는 ㄱ자형 식탁으로, 이는 가벽과 원래 벽 사이에 낸 벽감에 식탁 상판 한쪽을 올려놓으면 고정되는 형태입니다.”
살림을 하는 소피는 건축가의 솔루션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벽면과 천장의 부피가 더 커졌지만 활동 공간은 좁아지지 않았고, 창문은 그대로였지만 실내로 들어오는 자연광은 이전보다 훨씬 밝고 풍부해진 ‘기적’을 일궜다. “공간을 하나의 유기체처럼 표현하는 베스피 드 뫼롱 로메오 건축가들의 실력이 낳은 결과입니다. 천장, 벽면, 바닥을 모두 흰색으로 처리해 모던한 로프트 스타일을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공간 자체를 거대한 입체파 조형물처럼 풀어냈지요. 그리고 이곳이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창문 ‘틈새’에서 퍼져 나오는 빛줄기 때문입니다.” 베스피 드 뫼롱 로메오의 건축가들이 자부심을 갖는 부분은 창문이다. 기존 사이즈를 유지하면서 실내에 빛을 가득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일종의 트릭이 필요했다. 창문이 있는 벽면과 천장 부분에 가벽을 만들어 창문을 상대적으로 깊게 만들어 빛이 확산되는 효과를 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은 마치 조명 갓에서 퍼져 나오는 불빛과 같죠. 덕분에 각이 진 천장과 벽면의 양감이 도드라지는 겁니다.” 과감한 컬러나 시선을 압도하는 독특한 소재 하나 쓰지 않고도 독보적인 인테리어 디자인을 완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 집. 불과 1년 전, 이곳이 창고로서도 가치가 없어 버려진 공간이었다는 게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1,2 거실과 주방, 루프톱 정원이 있는 위층은 한마디로 ‘집 속의 집’처럼 꾸민 것이 특징이다. 각 공간은 마치 독립된 집처럼 디자인했는데, 이는 천장과 벽면에 가벽을 만들어 표현한 것. 덕분에 벽면의 볼륨은 커졌지만 그 내부에 책장, 장식장 등 수납공간을 마련해 별도의 가구를 들여놓을 필요가 없다. 원목 식탁은 이 집을 디자인한 건축사무소에서 직접 제작한 것이고, 의자는 화이트 콘셉트의 공간에 어울리는 임스 플라스틱 사이드 체어다. 싱크대 옆 벽면은 붙박이 냉장고와 팬트리 등을 배치했다. 3 부부 침실에 있는 개방형 욕실. 침실 자체는 그리 크지 않지만 욕조를 공간 구조의 일부인 듯 붙박이 형태로 제작한 덕분에 한층 여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1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이웃한 아래층 복도. 바닥과 벽면을 모두 화이트로 연출한 가운데 오크 원목 가구와 소품, 모노톤의 아트워크로 따뜻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구현했다. 2 집주인의 첫째 딸 방. 단순 간결한 우드 데스크와 침대는 모두 이 집을 개조한 건축사무소 베스피 드 뫼롱 로메오에서 제작한 것이다. 이 방 역시 오리지널 천장 몰딩을 보존했다. 3 아래층에 있는 게스트 룸. 천장의 석고 몰딩 장식은 원래 이 건물이 지어질 당시부터 있던 것으로, 리모델링할 때 원형을 그대로 보존했다. 우드 사이드 테이블은 이 집을 개조한 건축사무소에서 디자인해준 것이다. 4 집주인 부부가 아르헨티나에서 가져온 폴로 볼. 친구들의 사인이 있는 볼과 아티스트의 패턴이 더해진 볼을 거실 테이블 위에 장식으로 놓았다. 5 블랙 세라믹 테이블웨어는 디자이너 넬슨 세풀베다(Nelson Sepulveda), 냅킨은 홈 패브릭 브랜드 메종드바캉스(Maison de Vacances)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