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 이상, ‘건축무한육면각체(Au Magasin de Nouvotes)’ 중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말처럼 이 사물은 수많은 사각형을 내부에 끌어안고 있는 3차원 현실의 건축물이다. 매우 예민한 감각을 지닌 20세기 초 서울(경성)의 한 토박이 시인은 이 새로운 상점(Magasin de Nouvotes)을 보자마자, 이곳이 이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가 본 사물은 영화 <암살>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무대,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현 신세계백화점)이었다. 

시인은 이 시에서 사물의 외양을 단지 기하학적으로 포착하거나 그 모습을 과장스럽게 묘사하지 않았다. 백화점이라는 사각형 입방체 ‘내부’를 꿰뚫는 시적인 ‘도면’을 그려내면서, 그는 소비적 욕망의 무한 반복과 탕진의 메커니즘이 ‘현대’라 불리는 새로운 시대의 절대적인 존재론적 근거가 될 것을 감지한다. 그는 이 욕망의 한복판에 똬리를 틀고 있는 도시적 ‘공허’를 직감하고 있었다. 

이 1930년대 모던 보이가 요즘 태어났다면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 “사각형위에사각형위에사각형위에사각형위에사각형”,  “사각형옆에사각형옆에사각형옆에사각형옆에사각형”. 20세기 초 경성에서 내부에 많은 사각형을 거느리고 있는 건축물이라고 해봐야 백화점이 유일했겠지만, 지금 서울은 외형적으로 이미 육면체(사각형 입방체)들의 연합으로 만들어진 거대 레고 블록이다. 

‘아파트’라는 사물, 그 사물은 도시에 다른 기하학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각형 제국주의’이며 진정한 ‘건축무한육면각체’다.

20세기 초 백화점이 재화의 소비와 관련된 ‘하쿠라이(박래품 舶來品)’였던 것과 달리, 아파트는 ‘부동산(不動産)’이라는 사물 형식을 통해 사물의 태환(兌換) 가능성을 ‘깔고 앉아’ 있다. 부동산은 말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재화’란 뜻이다.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아파트’는 거주자의 ‘지금 시간’에 충실하기보다는 이후에 기대되는 ‘교환’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사물 스스로 품고 있는 물리적 가능성이 전적으로 실현되는 일을 유보한다. 이 유보에서 가장 문제적인 것은 ‘거주’라는 집의 고유한 가능성이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늘 팔리거나 이사하거나 재건축되는 방식으로 교환의 시간을 기다리는 ‘아직 아닌’ 미완의 사물이며, ‘집’이라는 형식에 존재하는 거주의 가능성은 충분히 숙고되지도, 전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므로 탕진되지도 못한다. 유보된 거주의 가능성에서 궁극적으로 유예되고 있는 것은 ‘산다’는 동사다. ‘산다’라는 동사에 내포된 ‘삶’(‘삶’은 동사‘산다’ 에서 파생된 명사다)의 연속성과 전시간적 가능성은 사고 팔리고 부수고 다시 짓고 이사하고, 그러나 재화 자체는 묶여 있는 ‘부동산’이라는 물리적 형식 속에서, 단속적이고 파편적이며 응고되어 있다. 

‘산다’라는 동사의 지연과 유보는 축적과 재생산의 욕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육면각체’  블록에 일단 들어가면 20평의 입방체를 30평으로, 40평으로, 1층을 5층으로, ‘로열층’으로 계속 넓히고 높이려는 욕망에 시달린다. 하나만 더, 지방의 것은 서울로 바꾸고, 강북의 삶은 강남으로 옮기며, 옛것은 부수고 새것으로, 자기 것은 필사적으로 자식 세대에 물려주거나 그 몫으로 하나 더 확보해야 한다는 확장·증식의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욕망은 육면체를 확장하고 증식하기 위해 ‘거주한다’, ‘산다’에 내재된 고유한 욕구를 억제하고, 행복을‘지금-여기’에서 즉각적으로 실현하려는 욕구를 유예하는 것이다. ‘현재’의 가능성은 ‘다음으로’, ‘미래로’, ‘자식 세대로’ 유보된다. ‘다음-미래’ 시간의 끝에 인생의 황혼, 다름 아닌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도시인은 의외로 많지 않다. 

이 ‘건축-무한-육면각체’ 메커니즘에서 진정으로 ‘무한한 것’은 감가상각 없이 끝없이 확장되고 증식되고 재생산되고 대물림될 수 있는 재화가 아니라(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유한한 재화가 계속 증식될 수 있고 유지될 수 있다고 오해하는 도시적 욕망의 메커니즘이다.

‘건축무한육면각체’ 욕망이 제국주의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육면각체’ 블록이 멈추지 않고 도시의 지형을 획일적인 기하학으로 바꿔나가기 때문만은 아니다. 피가 전혀 섞이지 않아도, 내 머리 위 사각 천장 위에 발 딛고 사는 이가 누구인지도 전혀 모르지만, 이 블록에 사는 이들이 비슷한 취향과 비슷한 생각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게 되며, 심지어는 정치적 선택까지도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지 않은가.

about 함돈균은 문학과 철학, 인문학과 사회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학자다. ‘실천적 인문공동체 시민행성’에서 사회 연대의 바른 모델을 탐구한다. 사물과 인간, 사회의 연관성을 고찰한 <사물의 철학>이라는 책을 썼다.

By Ham Donk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