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 경부고속도로에서의 일이다. 목적지인 서울까지 약 1시간 떨어진 곳이었고, 왕복 8차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곧 짙은 안개를 만났다. 갑자기 심해진 안개로 전방 시야 거리가 20미터도 채 안 됐다. 차들이 일제히 비상등을 점멸하며 시속 50킬로미터로 속도를 줄였다. 모든 운전자가 신속하게 돌발 상황에 적절히 대처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제한속도의 절반으로 속도를 줄인 상황에서 누구도 바깥쪽으로 차로를 변경하지 않은 것이었다. 모든 승용차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1, 2차로를 그대로 달리고 있었다. 심지어 3차로와 4차로가 텅 빈 구간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승용차 대다수가 똑같이 행동하다 보니 오히려 그 광경이 당연하게 보일 정도였다. 물론 그 와중에도 흐름보다 빠르게 달리는 운전자도 있었다. 이들은 안개 사이로 이리저리 차를 피하며 위험하게 앞차를 추월해갔다.
 

한국에서 10여 년을 운전하며 고속도로 1차로에 대한 운전자의 인식이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종종 ‘해도 너무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고속도로 1차로는 ‘추월 차로’로 분류된다. 사실 추월은 모든 차로에서 허용된다. 단지 나보다 느린 차를 왼쪽으로 추월하고, 나보다 빠른 차를 위해 오른쪽으로 비켜주는 법칙에 따라 2차로의 추월 차로를 1차로로 정한 것이다. 이는 단순 캠페인이 아닌 도로교통법이다.
 

 모르는 사람은 그렇다고 치자. 추월 차로의 의미를 알고도 지키지 않는 운전자가 태반이다.

도로교통법 제1장 제20조 ‘진로 양보의 의무’에 따르면 모든 차(긴급자동차 제외)는 뒤차보다 느린 속도로 달릴 때 도로의 우측 가장자리로 피하여 진로를 양보해야 한다. 제21조 ‘앞지르기 방법’에는 모든 차는 다른 차를 앞지를 때 앞차의 좌측으로 통행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 추월 차로도 정해진 규칙을 벗어나면 단속의 대상이다. 텅 빈 고속도로에서 1차로로 이유 없이 정속 주행하거나, 고속도로 평균 흐름 속도 이하로 달리면 언제든 고속도로 경찰에게 걸려 벌점 10점에 범칙금 4만원(승합 및 4톤 초과 5만원)을 물게 된다. 물론 예외도 있다. 2차로 이하 차로가 차들로 꽉 차 있거나, 추월 도중 나보다 빠른 차가 뒤에서 다가올 때 오른쪽 차로로 갑자기 비켜주기 어려운 순간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문제의 핵심은 1차로를 달리는 행동이 아니다. 대부분의 운전자가 추월차로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모 자동차 카페에서는 한 운전자가 ‘1차로를 달리다 지정차로 위반으로 단속에 걸렸다’며 황당하다는 글을 올렸다. ‘규정 속도에 맞게 1차로로 달린 것도 죄냐’며 이번 단속이 부족한 세수의 충당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물론 게시물에 달린 댓글의 대부분도 글쓴이를 옹호하는 내용이었다.
 

모르는 사람은 그렇다고 치고 넘어갈 수 있다. 추월 차로의 의미를 알고도 지키지 않는 운전자도 많다. 이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고속도로에서 과속은 불법이기 때문에 추월 차로에서 달릴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가 곧 최대 제한속도라는 것이다. 즉 최대 제한속도로 1차로를 달리는 게 무슨 문제냐는 주장이다. 하지만 고속도로의 추월 차로는 ‘진로 양보 의무’와 ‘속도위반 금지의 의무’ 모두에 해당한다. 그러니 둘 중 하나라도 어기면 위법
이다.
 

굳이 법을 앞세워 이야기하지 않아도 추월 차로를 비워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안전 문제를 예로 들자. 요즘 고속도로에는 지그재그 형태로 차를 모는 운전자가 많다. 소위 ‘칼치기 운전’으로 불리는 운전법이다. 대부분 도로의 평균 흐름보다 빨리 달리기 위해서는 이런 운전법을 택한다. 이런 운전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행위다. 하지만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이들이 왜 이렇게 운전하는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 추월 차로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에서 앞차를 추월하려면 1차로를 달려야 한다. 하지만 1차로부터 4차로까지 모든 차들이 길을 막고 정속 주행하는 상황에선 추월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차들 사이로 요리조리 피해 추월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해외 사례는 어떨까? 예컨대 제한속도가 시시각각 변하는 독일의 고속도로에서는 빠르게 달리는 차들이 추월 차로를 이용한다. 그래서 2차로부터 3, 4차로를 가로지르는 난폭 운전자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간혹 있긴 하다). 1차로를 비롯해 고속도로 평균 흐름 속도가 빠르지만,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우리가 운전하는 이곳은 독일이 아니다. 속도 무제한 구역도 없다. 당연히 과속을 통해 앞차를 추월하는 행동이 옳다거나 정당화하자는 뜻도 아니다.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든 ‘과속’과 ‘추월 차로’는 별개다. 남들이 추월 차로에서 과속하니까 나도 법을 지킬 이유가 없다며 1차로를 점령한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사실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 고속도로 차로를 속도가 ‘느린 차’와 ‘빠른 차’로 구분하지 않고 차의 형태로 나눴기 때문이다. 지정자로 운행법을 보면 고속도로 3, 4차로는 대형 승합차와 화물차, 2차선은 그 외에 승용차와 소형 승합차가 주행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선 그 많은 승용차를 배제하고 1차로를 언제나 비워야 한다는 주장이 현실성과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고속도로 1차로의 풀리지 않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모든 승용차 운전자가 간단한 룰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된다. 먼저 텅 빈 고속도로에서 1차로로 달리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1차로로 추월 중 나보다 빠른 차가 뒤따르면 오른쪽 차선으로 비켜주면 된다. 물론 빠르게 달리는 차도 상황에 따라 느린 차를 배려해야 한다. 나보다 느린 차가 1차선에 있더라도 길을 쉽게 비켜주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충분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속도로 1차로는 적절한 상황 판단과 모두의 이해관계가 잘 맞을 때 빛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우선 나부터 지키는 게 중요하다.